조선시대 ‘자만시’ 계보 연구 “죽음을 객관적으로 보는 시… 삶에 대한 열망 드러낸 것”
조선 전기 문신 남효온(1454∼1492)이 남긴 시 가운데 아버지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자녀들의 모습을 묘사한 부분이다. 흥미로운 건 이 시 속의 아버지가 남효온 자신이라는 것. 망자가 죽음을 슬퍼하는 가족의 모습을 직접 보고 시를 짓는 건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다. 이 시는 이른바 ‘자만시(自挽詩)’다. 타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만시(挽詩)를 자신을 대상으로 지은 것이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는 조선시대 자만시의 계보를 연구한 책 ‘나의 장례식: 自挽詩(자만시), 나의 죽음 소유하기’(고려대 출판문화원)를 최근 발간했다.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으로서 벼슬을 단념한 채 평생 바른말을 아끼지 않았고, 단종을 위해 절개를 지키다 죽은 이들을 다룬 ‘육신전’을 펴냈던 남효온의 삶이 시를 통해서도 그려지는 듯하다. 남효온은 이 자만시를 남기고 3년 뒤 세상을 떴다.
“늙은 홀아비 신세 담박하기가 중과 같고, 고루하니 어찌 멀리 있는 벗 찾아온 적 있으랴. 쇠한 눈이라 일찍 온 봄에 더욱 놀라니, 매화 이미 졌지만 살구꽃 아직 남았기에.”
과거를 포기하고 학문에 전념했던 숨은 선비 김상연(1689∼1774)의 자만시다. 죽음의 겨울, 일찍 찾아온 봄, 져버린 매화와 남은 살구꽃의 대비가 선명하고 의미심장하다.
책에 따르면 자만시의 뿌리는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 양식화된 만가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시대 중국의 만시와 자만시는 보편적 생사를 주요 주제로 한 반면 조선의 자만시는 개인적 사연을 담은 자만시가 많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