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이런 추세에 비해 패션에서의 메이커 제품은 좀 늦은 감이 있었습니다. 패션의 기성복화가 다른 산업보다 좀 늦은 탓이겠죠. 일찍이 직물산업은 부산방직, 전남방직, 충남방직 등 지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존재했고 한일합섬, 선경직물 등 회사명을 메이커로 한 차별화된 섬유기업들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패션산업은 1970년대에 가서야 대기업에서 반도패션, 제일모직 등으로 기성복 산업에 진출했죠. 초기에는 맞춤복에 익숙한 소비자들에게 외면 받고 고가의 가격 때문에 판매량이 저조했지만 곧 기성화 된 사이즈 체계의 정립과 빠른 시간이 중요한 자산이 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등으로 메이커 패션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반도패션의 여성복 투피스, 제일모직의 남성복 정장을 입는 것이 과거 세대의 말표 고무신이 된 셈이죠. 그래서 백화점에서 메이커 옷을 사 입는 것이 동네 양장점이나 양복점에서 옷을 맞추는 것보다 대접받는 시대가 됐습니다. 그래서 계모임이라도 “나가서 이 옷 어디서 샀어?” “이 옷 어디거야?” 라고 물으면 “이거 백화점에서 산 메이커잖아!”라는 자랑 섞인 답변이 곳곳에서 들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뒤늦게 메이커 시대에 돌입한 패션산업이 빠르게 브랜드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제조사인 메이커의 상표만으로는 세분화되는 남성, 여성, 아동, 캐주얼, 스포츠 웨어 등등의 카테고리를 다 섭렵할 수도 없었고 해외브랜드를 경험한 소비자들의 높아진 기호를 충족시킬 수도 없었기 때문이죠. 이때부터 발음하기도 어렵고 기억하기도 어렵지만 제조사의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는 패션 브랜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잇달아 가전, 전자업체들도 제조사인 메이커를 포기하고 남성복, 여성복의 브랜드처럼 TV, 냉장고, 오디오 등의 카테고리별로 브랜드를 내세웠습니다. 가장 큰 자산 중의 하나인 집에도 브랜드 열풍이 불었습니다. 건설회사의 메이커를 전면에 내세웠던 아파트에서 어느 브랜드의 아파트에 사느냐가 중요해졌죠. 건설회사의 이름은 모델하우스의 구석에 찾아봐야 알 정도로 작아졌습니다. 시어머님이 아들집 찾기 어렵게 집을 브랜드 아파트로 이사해야 한다는 우스개 소리의 농담도 나왔습니다.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