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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美엔 손 내밀며 南엔 미사일 도발, 김정은의 불순한 직거래 셈법

입력 | 2019-09-11 00:00:00


최선희 북한 외무성 1부상이 9일 밤 “9월 하순 합의되는 시간과 장소에서 미국 측과 토의할 용의가 있다”고 제안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만남은 늘 좋은 것”이라고 화답하면서 오랜 교착상태였던 북-미 실무협상이 재개될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북한은 어제 또다시 단거리미사일 두 발을 발사했다. 남한을 사정권에 둔 미사일 도발은 올해 10번째다.

그동안 온갖 이유를 들어 협상 자체를 거부하던 북한이 일단 대화 용의를 밝힌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북한의 자세에 변화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최선희는 미국에 ‘접수 가능한 계산법에 기초한 대안’을 갖고 오라며 “낡은 각본을 또다시 만지작거린다면 그것으로 막을 내리게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자신들의 셈법에 어긋나면 그걸로 끝이라는 위협이다.

북한이 대화 용의를 밝힌 것은 미국이 그동안 끊임없이 북한에 강온 메시지를 보내며 대화를 압박한 데 따른 결정일 것이다. 최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협상 테이블에 복귀하지 않으면 트럼프 대통령이 매우 실망할 것”이라고 했고,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는 ‘한일 핵무장론’까지 거론했다. 북한으로서도 더는 시간을 끌기 어렵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실무협상이 시작되더라도 의미 있는 합의를 이룰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한국을 배제한 채 미국과만 협상하겠다는 북한의 통미배남(通美排南) 전술은 비핵화 대화의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북한은 어제도 단거리 도발로 ‘한국은 나서지 말라’는 대남 메시지를 보냈다. 아울러 미국에는 단거리 위협은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지난해 한국의 중재로 북-미 대화의 길을 연 북한이다. 그런데 이젠 한국을 빼고 미국과 직거래하겠다는 의도는 뻔하다. 그간 주장해온 ‘단계적 동시 이행’ 방식에 따라 영변 핵시설 포기로 대북제재를 풀고, 다음 단계로 한미동맹 해체를 노리겠다는 살라미 전술이다. 거기에 한국은 거추장스러운 존재일 뿐이다. 이런 거래를 두고 선미후남(先美後南·미국 다음엔 한국)이라며 기대를 걸 일은 결코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