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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몰라야 정상인데…[오늘과 내일/신연수]

입력 | 2019-09-05 03:00:00

조국 “딸 인턴-장학금 몰랐다”… 요지경 대입-장학금제가 원죄?




신연수 논설위원

2010년 큰아이가 고교생이 되면서 입시 문외한이던 나도 대입 전형들을 ‘공부’한 적이 있다. 수천, 수만 가지 별별 전형이 많아서 그 많은 전형 가운데 우리 아이에게 유리한 종목을 찾아내는 것이 과제였다. 명문 사립대들의 외고생 특목고생 유치 경쟁이 심하던 시절이다. 심지어 서울 유명 사립대는 영어 특기만으로 의대생을 뽑는 전형도 있었다. ‘아빠의 무관심과 엄마의 정보력’이 중요하다길래 입시설명회도 쫓아다녀 봤지만 이른바 ‘돼지엄마’의 알짜 정보는 못 구했다. 결국 아이가 알아서 친구 따라 동아리 들고 학원 알아봐 어찌어찌 대학을 갔다.

아이들이 대학생이 된 뒤에는 늦게 들어오고 늦게 일어나니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어느 해 연말정산을 하다가 아이가 봉사장학금이란 걸 받은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학교 일을 도와주고 받은 모양인데, 등록금은 내 통장에서 나가지만 장학금은 아이 통장으로 들어오는데 내가 어찌 아나? 올해 겪은 일은 더 황당하다. 학교에서 작년 장학금이 남았다고 올해 초에 갑자기 아이 통장에 작년분 장학금을 입금했다는 것이다. 대학들이 장학금 운영을 그렇게 주먹구구로 하다니 정말 놀랐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딸이 한영외고 시절 단국대 의대에서 인턴을 하고 학회지 논문 제1저자가 된 것은 애초에 학교에서 주선한 것이며 나는 몰랐다”고 했다. 대학원생 때 장학금을 어떻게 받았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그가 정말 몰랐는지,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어떻게 모를 수가 있느냐”는 사람들이 있는데 부인 등 가족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조 후보자 본인은 진짜 몰랐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아이가 어떻게 대학에 가고 장학금을 받는지 부모는 잘 모르고 아이가 알아서 하는 것이 정상 아닌가. 대학생이면 어엿한 성인인 데다 외국에서는 대부분 따로 나가 살 만큼 독립적인 주체다. 대학생도 아니고 대학원생 자녀의 장학금을 아빠의 영향력으로 받았다고 의심하는, 아니 의심할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 현실이 서글프다. 실제로 대학 점수를 조작한 정유라 사건이나, 딸의 취업을 위해 뛴 국회의원이 있으니….

내가 아는 대학은 동창회 임원이 “학생들이 장학금을 별로 고마워하지 않아 대상 선정이 힘들다”고 했는데 대학 총장은 “어려운 학생들 장학금이 부족하니 기부를 더 해 달라”는 경우도 있었다. 같은 대학인데 한쪽은 남고 한쪽은 부족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 장학금을 줄 자원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사람에게 혜택이 가도록 정보 교환과 제도 개선을 안 하는 어른들이 문제다.

조 후보자의 기자회견 이후 나라가 두 진영으로 쫙 갈라졌다. 그가 말만 번지르르 잘하는 거짓말쟁이인지, 혼자만 잘살 수도 있는데 공동체를 걱정하는 개혁가인지는 모르겠다. 딸 문제를 포함해 다양한 의혹을 받고 있으니 수사를 통해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청년들의 좌절을 어떻게 희망으로 바꾸느냐다. 지금처럼 대학 간판이 평생을 좌우하는 상황에서는 불법만 아니라면 부모가 돈과 인맥, 능력 등 모든 자원을 동원하게 돼 있다. 과거와 달리 부모가 가진 자원의 차이가 워낙 커서 불평등의 대물림은 심해질 수밖에 없다. 내 주변에서도 부모가 인맥을 동원해 인턴 자리를 마련해주고 학원에서 자기소개서를 써주는 사례를 봤다. 우리 가족은 별로 해주지 못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등록금 걱정을 안 했으니 그것만으로도 큰 혜택을 받았다.

경제 사회 문제가 난마처럼 얽혀 있는 현재 한국 교육은 공정성이란 ‘구호’만으로 단칼에 개선하기 어렵다. 교육이 계층사다리 기능을 회복하고 미래 사회를 준비할 수 있도록 다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한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