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네팔 히말라야 등반 도중 실종된 직지원정대 소속 고(故) 민준영(왼쪽, 당시 36세)과 박종성(〃 42세). (직지원정대 제공) /© 뉴스1
10년 전 실종된 히말라야 직지원정대 소속 고(故) 박종성(당시 42세) 대원의 것으로 추정되는 배낭 레인커버. 박 대원은 2009년 9월1일 히말라야 히운출리(6441m) 원정 도중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길목인 촘롱 지역에서 자신의 배낭 레인커버에 영문 등으로 ‘2009 직지. 히운출리 원정대. 나는 북서벽을 오르길 원한다’고 직접 적었다. (충북산악구조대 제공) 2019.8.12 /뉴스1 © News1
10년 전 히말라야에서 실종됐던 직지원정대 소속 고(故) 민준영(당시 36세)·박종성 대원(당시 42세)의 화장이 15일(현지시간) 네팔 카트만두 소얌부나트 사원에서 네팔 전통방식으로 엄수되고 있다. 박연수 전 직지원정대 대장(오른쪽)과 유족들이 눈물을 흘리며 고인이 된 대원들의 명복을 빌고 있다. 2019.8.16 /뉴스1 © News1
직지원정대장이지난해 11월 21일 청주고인쇄 박물관 직지교 옆에 설치된 직지원정대 박종성(당시 42)·민준영(당시 36) 대원 추모 조형물. /© News1
“수많은 산악인이 고산 등반 도중 동료를 잃고 평생 죄인으로 살아갑니다. 대원들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 괴로움과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이제라도 돌아와 준 대원들에게 너무 감사합니다.”
고(故) 민준영(당시 36세)·박종성(당시 42세) 직지원정대 대원이 17일 박연수 전 직지원정대장과 가족들의 품에 안겨 1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2009년 9월25일 오전 8시15분 히말라야 히운출리 북벽에 ‘직지루트’를 개설하려 등반하던 두 대원은 박 전 대장과의 교신을 끝으로 연락이 끊겼다.
그렇게 10년이 지나서야 민준영·박종성 대원이 돌아왔다.
지난달 양떼를 몰던 양치기 크리쉬나 푼씨(22)가 이들의 시신을 발견했다.
발견 장소는 마지막 교신 지점에서 320m가량 떨어진 곳으로 전해졌다.
실종 뒤 히말라야 빙하가 녹으면서 발견된 지점으로 내려왔거나 눈사태에 휩쓸려 시신이 옮겨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2009 직지. 히운출리 원정대. 나는 북서벽을 오르길 원한다.’
등반 당시 박종성 대원이 직접 문구를 적은 레인커버 등을 확인한 박 전 대장 등은 실종된 대원들로 확신했다. 박 전 대장과 유족들은 12일 오전 네팔로 향했다.
발견된 두 사람의 시신은 15일 현지 부검의 등을 통해 민준영·박종성 대원으로 최종 확인됐다.
부검의는 “시신이 햇빛에 노출되면 빠르게 부패한다”며 “이번에 발견되지 않았다면 영원히 이들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화장에 앞서 박 전 대장은 “준영이와 종성이가 자일에 엮여서 10년간 히말라야에 함께 있었는데 마지막까지 손잡고 함께 보낼 수 있어서 마음이 놓인다”며 “두 대원은 영원한 직지원정대”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장과 유족은 두 대원의 유해를 품에 안고 17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민준영·박종성 대원은 꼬박 10년 만에 고향인 충북 청주로 돌아왔다.
박 전 대장은 “만감이 교차한다”며 “이렇게 돌아와 준 준영이와 종성이에게 감사하면서도 당시 아픔이 되살아나기도 해 가슴이 먹먹하다”고 말했다.
그는 두 대원에게 “10년의 긴 등반이 마무리돼 간다. 그 추운 곳에서 우리를 만나려고 오랫동안 버티고 견뎌줘 고맙다. 이제는 고향의 품에서 편히 쉬었으면 좋겠다”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직지원정대는 2006년 지역 산악인 등 30여명으로 구성됐다. 2007년 히말라야 차라쿠사지역 미답봉 등반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2008년 재수 끝에 미답봉 등반해 성공했고, 민준영·박종성 대원이 이곳을 ‘직지봉’(해발 6235m)으로 명명한 주인공들이다.
하지만 두 대원은 2009년 히밀라야 히운출리 북벽 직지루트 개척 등반에 나섰다가 실종됐다.
직지원정대는 실종된 두 대원을 위한 추모조형물을 세우는 등 추모 활동을 이어왔다.
(청주=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