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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손흥민과 호날두처럼, 선수들은 왜 유니폼을 교환할까?

입력 | 2019-07-25 05:30:00

토트넘 손흥민(오른쪽)과 유벤투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최근 한 장의 사진이 화제가 됐다. 21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인터내셔널 챔피언스컵(ICC) 경기에서 손흥민(토트넘)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유벤투스)가 유니폼을 교환하는 장면이 이목을 집중시켰다. 축구경기에서 유니폼을 바꾸는 건 흔한 일이지만, 전반전이 끝난 뒤 교환이 이뤄지는 게 드문 데다 그 주인공이 손흥민과 호날두였기에 관심은 뜨거웠다.

잘 알려진 대로 호날두는 손흥민의 롤 모델이다. 같은 경기장에서 뛰는 게 소원이라고 말할 정도로 손흥민이 동경하는 선수가 호날두다. 우상을 닮고 싶다는 손흥민의 별명도 ‘손날두’다. 평소 자존심 때문에 유니폼 교환을 먼저 말하지 않는다는 손흥민도 이날만큼은 달랐다.

사실 손흥민도 누군가에겐 동경의 대상이다. 상대 선수들이 유니폼을 받고 싶어 하는 스타플레이어다. 지난달 이란대표팀과 평가전 때 이란 선수가 라커룸 근처에서 손흥민을 기다린 끝에 유니폼을 얻었을 정도로 아시아에선 손꼽히는 존재다. 그런 손흥민도 우상에게는 먼저 다가가 자신의 감정을 스스럼없이 드러냈다.

축구선수의 유니폼 교환은 1931년 프랑스 콜롱브에서 열린 잉글랜드와 친선경기에서 5-2로 크게 이긴 프랑스 선수들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유니폼을 바꾸자고 제의한 데서 유래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엔 역사적인 경기를 추억하는 장치로 유니폼이 활용됐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의미로 확장됐고, 이제는 에티켓처럼 자리 잡았다.

유니폼 교환에는 상대 선수에 대한 존중이 담겨 있다. 그라운드에서 치열하게 싸웠지만 경기가 끝났으니 적대적인 감정을 털어버리자는 의미로, 서로 땀에 젖은 유니폼을 맞바꾼다. 일종의 스포츠맨십이다. 인종이나 종교, 국경을 초월하는 축구의 순수성을 잘 보여주는 행동이다. 또 손흥민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의 유니폼을 소장하려는 이들에겐 존경의 표시이기도 하다. 우상의 유니폼을 갖는다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해지기 때문에 유니폼의 가치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유니폼이라고 해서 다 같은 유니폼은 아니다. 유명한 선수일수록 인기가 높은 건 어쩔 수 없다. 경기 후 특정 선수의 유니폼을 얻기 위해 치열한 눈치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때 북한대표팀 정대세는 같은 조에 편성된 브라질의 카카,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코트디부아르의 디디에 드록바와 유니폼을 교환하기 위해 포르투갈어를 배웠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로 적극적인 선수들도 꽤 많다.

스타의 유니폼은 시간이 흐를수록 값어치가 더해진다. ‘축구황제’ 펠레가 1970년 멕시코월드컵에서 입은 유니폼을 소장한 이탈리아의 한 선수 가족이 2002년에 31만 달러에 팔았다는 외신 보도도 있었다. 희소성 때문에 값이 껑충 뛴 것이다.

유벤투스가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팀 K리그’와 경기를 갖는다. 이번에도 호날두의 유니폼을 두고 눈치싸움이 장난 아닐 것이다. 미리 찜한 선수도 있다. 대구 공격수 세징야다. 호날두 영상을 보면서 축구를 배웠을 정도로 광팬인 그는 “포르투갈어를 쓰니 다른 선수보다 유리하다”며 호날두 유니폼을 벼르고 있다. 행운의 주인공이 누가 되든 추억으로 남을 만한 선물이다.

비단 선수들뿐이겠는가. 이날 모이는 6만여 명의 팬들에게도 잊지 못할 한여름밤의 추억이 될 것이다. 비록 호날두의 유니폼은 아니더라도 그들이 최선을 다해 뛰는 모습이라도 기억에 담고 싶은 게 나의 바람이다.

최현길 전문기자·체육학 박사 choihg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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