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간송 전형필 선생(1906∼1962·사진)이 구세주처럼 나타납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이미 동아시아에 널리 이름이 알려진 문화재 수집가였습니다. 1940년경 김태준이라는 사회주의 계열 국문학자로부터 해례본의 실존 소식을 접한 간송은 목숨을 걸고 해례본 찾기에 나섭니다. 간송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훈민정음해례본은 간송의 품에 들어갑니다. 간송은 이를 비밀리에 지켜오다가 광복 후 조선어학회 학자들에게 영인본을 공개하며 한글 연구에 박차를 가하도록 합니다.
해례본이 알려지기 전까지 학자들은 한글 창제의 원리를 추측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대 글자 모방설, 범자(梵字) 기원설, 몽골문자 기원설, 창살 모양 상형설 등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우리 한글의 독창성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유네스코에서는 1990년부터 매년 문맹 퇴치에 공이 큰 사람들에게 ‘세종대왕 문맹 퇴치상(King Sejong Literacy Prize)’을 주고 있습니다.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이 가장 배우기가 쉬워 문맹을 없애기에 최적의 글자임을 세계가 인정한 겁니다.
훈민정음에는 해례본 외에도 해례본을 한글로 풀이한 언해본(諺解本)이 있습니다. 세종이 직접 지은 언해본은 한글을 만든 이유와 한글 사용법을 간략히 설명한 글로 흔히 ‘훈민정음 예의본’이라고도 합니다.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나라 말씀이 중국과 달라”로 시작되는 문장은 언해본 첫머리에 나오는 글입니다.
훈민정음 원본인 해례본에는 간송에 의해 보관된 간송본 외에 상주본이 있습니다. 2008년 처음 존재가 드러난 이 상주본 문제로 시끄럽습니다. 현재 상주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배익기 씨입니다. 골동품상으로부터 구입했다고 주장하는 배 씨는 소유권 관련 수차례의 소송에서 모두 패소했습니다. 15일 대법원은 배 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국가 손을 들어줬습니다.
이로써 국가는 상주본을 확보할 수 있게 됐으나 그 소재를 아는 유일한 사람인 배 씨는 대가로 1000억 원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가 마음을 바꾸지 않는 한 찾을 방법이 없는 난감한 상황입니다. 배 씨의 요구는 정당한 사익 추구 행위로 봐야 할까요. 한일 간 경제 전쟁이 불붙고 있는 요즘 세종대왕의 애민정신, 간송의 애국심이 새삼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