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소 소유자 “1000억 가치 못 뺏겨”… 문화재청 “반환 계속 설득할 것”
2017년 7월 소장자 배익기 씨(56)가 공개한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일부가 불에 그을려 훼손돼 있다. 뉴시스
한글 발음 설명서인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 解例本) 상주본의 현 소장자인 배익기 씨(56)는 지난해 10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렇게 말했다. 국가에 되돌려줄 뜻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주본은 내 것”이라는 배 씨 생각과 달리 대법원은 상주본의 소유권이 국가에 있다고 확정 판결했다.
사건은 11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경북 상주의 고서적 수집가 배 씨는 2008년 7월 “집수리를 위해 짐을 정리하던 중 발견했다”며 상주본을 처음 세상에 공개했다. 문화재청 전문가가 현장을 방문해 확인했더니 진품이었다. 일제의 한글 말살 정책으로 대부분 소실됐던 해례본의 등장은 한글 연구에서 중요한 발견이었다.
이후 대법원은 2014년 5월 상주본을 훔친 혐의로 기소된 배 씨의 형사 사건에서 “뚜렷한 증거가 없다”며 무죄 확정 판결을 내렸다. 배 씨는 2017년 4월 “형사 사건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는데도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잘못됐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최근 상주본 소장자 배 씨가 “상주본 회수를 위한 강제 집행을 막아 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15일 확정했다. 재판부는 “형사 판결에서 무죄가 확정됐다는 사정만으로 고서의 소유권이 배 씨에게 있어 (강제 집행이) 배제되어야 한다고 볼 수 없다”는 2심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다만 상주본의 국가 환수가 바로 이뤄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현재 배 씨는 상주본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2015년 배 씨 집에 난 불로 책 아랫부분이 일부 훼손되는 등 보존 상태도 의문이다. 문화재청은 상주본 회수를 위한 강제 집행에 당장 나서지는 않고 배 씨를 설득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배 씨는 15일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상주본의 가치가) 1조 원이고 10분의 1 정도 되면 한 1000억 원 된다. (보상해주지 않으면) 그건 완전히 저는 억울하게 뺏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