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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고전영화 칸 상영 기대하며[기고/전찬일]

입력 | 2019-07-13 03:00:00


전찬일 영화평론가·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장

‘오발탄’(1961년)을 오랜만에 다시 봤다. 10일 열린 제4회 충무로뮤지컬영화제 개막식에서였다. 척박했던 전후 사회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 김기영 감독의 ‘하녀’, 신상옥 감독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와 더불어 ‘전후 한국영화의 삼각형’으로, 나아가 한국영화사의 으뜸 대표작으로 일컬어져온 문제적 걸작. 이번 특별 상영은 한국영화 100주년을 기념하고 유현목 감독 타계 10주기를 추모하는 함의를 띠는 터라 더욱 각별했다.

196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영화제에 출품됐던 필름을 확보해 2015년 한국영상자료원이 디지털로 복원한 영화 프린트도 눈길을 끌었지만 더 큰 주목을 요하는 것은 그 상영 형식이었다. 음악과 대사를 라이브 방식으로 선보인 것. 세계 유일의 뮤지컬영화제다운 창의적 발상이요, 기획이었다. 재즈 피아니스트 조윤성이 작·편곡을, 조윤성 세미-심포니 앙상블이 연주를, KBS 성우극회가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고 오발탄은 일찍이 열악한 화질·음질로 감상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감흥을 안겨줬다. 영화 속 시대와 인물들의 남루함에 비해 음악 효과나 목소리 연기가 지나치게 세련되고 풍성했지만 평생 잊을 수 없을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엔 모자람이 없었다. 그래서 ‘기생충’을 제작한 봉준호 감독에게 황금종려상을 수여한 올해 칸 영화제의 또 다른 공식 섹션 칸 클래식에 우리 영화가 없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30편 가까운 세계영화사의 문제작들이 그 부문에서 대거 선보여졌다. 2019년은 김도산 감독의 ‘의리적 구토’(1919년) 이후 한국영화 제작 100주년 아닌가….

오발탄의 시네라이브 상영을 칸에서 시도했어야 한다는 요지는 물론 아니다. 이 걸작의 복원판은 이두용 감독의 ‘최후의 증인’(1980년)과 함께 2017년 제67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소개된 바 있다.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아 비교를 허용치 않는 세계 최강 권위의 영화제에서 그 어떤 문제작이건 우리 영화 한 편쯤 상영됐더라면 싶은 아쉬움을 떨칠 수 없기에 하는 말이다.

이번 오발탄 기획은 영화 복원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주기도 했다. 일련의 영화들은 그저 시간 때우기 오락거리에 불과한 소비재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시대를, 인간 존재의 흔적들을 담아내는 소중한 문화재다. 마침 지난달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10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공동 주최한 ‘영상자료 복원사업 현황과 과제 토론회’에서 한국 고전영화 복원은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될 중대 과제라는 취지의 논의가 펼쳐졌다.

이 순간 크고 작은 또 다른 유감 및 바람이 밀려든다. 충무로뮤지컬영화제가 중단될 수도 있다는 비보가 들려온 것이 유감 중 하나다. 모쪼록 그 흔치 않은 영화제가 중단 아닌 변신으로 거듭나, 2020년에도 올해 못잖은 색다른 체험을 맛보게 해주길 바란다. 또 내년에는 우리의 귀중한 고전 영화가 칸 클래식에서 상영되길 희망한다.
 
전찬일 영화평론가·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