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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 못하는 청각장애학교 교사들… “대학서 제대로 안 가르쳐”

입력 | 2019-07-08 03:00:00

수화 아닌 글로 수업진행 다반사… 교사들 “학생들에게 미안”
따로 배우지만 시간 오래 걸려… 전문가 “필수자격 요건에 넣어야”




지난달 11일 서울의 한 청각장애학교. 고등학교 2학년 A 양(17)은 수학 수업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선생님이 수어(手語·수화)가 아닌 글로 설명했기 때문이다. A 양은 수화로 설명해 달라고 수화로 요청했다. 선생님은 “수화를 잘 못해서 미안하다”며 글과 구화(말)로 설명을 이어갔다.

선생님들도 난처하기는 마찬가지다. 특수교사 B 씨는 올 3월 처음 청각장애학교에 부임했다. B 교사는 대학 사범대 특수교육과에서 필수 과목을 이수한 후 임용시험까지 통과했지만 수화로 수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대학에서 수화를 깊게 배워본 적이 없다. 그는 “수화로 가르치면 좋을 텐데…. 답답하고 학생들에게도 미안하다”고 했다. B 교사는 매주 1시간씩 수화 동아리에 나가지만 수화에 능수능란해지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청각장애학교 선생님들이 수화에 능숙하지 않아 학생들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있다. 특수교육과를 졸업했지만 수화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청각장애학생들은 “청각장애학교 선생님이 수화로 수업할 능력도 없이 임용될 수 있느냐”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특수교육과 과목에는 수화 교육이 거의 없다. 교육부 ‘교사 자격종별 및 표시과목별 기본이수과목’ 자료에 따르면 특수교육과 필수 이수 과목 가운데 수화와 관련된 것은 ‘청각장애학생교육’밖에 없다. 이마저도 수화의 기초만 가르친다.

청각장애학생들은 일반적으로 수화를 통해 말과 글을 배운다. 잔존 청력이 거의 없는 중증 청각장애학생은 수화 없이는 한글도 배우기 어렵고 일반 교과목 학습은 더 어려운 실정이다. 교사의 수화 실력이 학생의 문해력, 사고력, 지식 습득 능력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국수어학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립, 공립, 사립 등 14개 청각장애학교의 전체 재학생 1308명 중 중증 학생은 523명(40.0%)이었다. 일반학교 특수학급에 다니는 청각장애학생을 포함하면 수화 사각지대에서 학습권을 침해받는 학생은 더 늘어난다.

교육 당국은 대학에서 수화를 깊이 있게 가르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교육부 관계자는 “특수학교 교사 자격은 일반 교사보다 30학점 많은 102학점을 들어야 취득할 수 있다”며 “특수교사를 장애별로 전문화하면 좋겠지만 지금보다 졸업 요건을 더 높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청각장애학교의 교사 선발 자격 요건 가운데 수화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허일 한국복지대 한국수화교원과 교수는 “교사 선발권이 있는 국립, 사립 청각장애학교부터라도 수화 능력을 필수 요건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특수교육과에서 수화를 배우려는 학생을 위해 프로그램을 소개하거나 금전적 지원을 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강동웅 기자 lep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