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청희의 젠틀맨 드라이버]
올해 빌라 데스테 최우수 출품차로 뽑힌 알파 로메오 8C 2900B는 지난해 페블비치에서도 수상했다. 사진제공 Kimball Studios / Pebble Beach Concours d'Elegance
행사장에서는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콘셉트카도 볼 수 있지만, 행사장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대부분의 차들은 클래식카다. 만들어진 시기가 짧게는 30년 전, 길게는 약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 올해 행사에 나온 50여 대의 차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1914년에 제작된 롤스로이스 40/50 H.P. ‘실버 고스트’였다. 콘셉트카를 제외하면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것은 1988년식 포르쉐 959였다.
이 차는 디자인 뿐 아니라 역사적 가치 면에서도 특별하다. 1937년부터 1940년까지 30대만 생산된 8C 2900B 베를리네타 가운데 다섯 대는 앞뒤 바퀴 간격이 나머지 차들보다 긴 ‘롱 휠베이스’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이번에 수상한 차는 그 롱 휠베이스 모델 가운데서도 첫 번째로 생산된 것이어서 희소성과 가치가 모두 높다. 당대로서는 첨단 기술로 만든 엔진에 힘입어 유명 스포츠카 및 경주차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성능을 냈다. 이처럼 거의 모든 면에서 흠잡을 곳 없이 훌륭한 면모를 지닌 차라면 경연에서 우승을 차지하더라도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이렇듯 콩코르소 델레간차 빌라 데스테는 관람객에게는 자동차가 줄 수 있는 즐거움과 놀라움을 한껏 느낄 수 있고, 출품차를 소유한 사람에게는 자신이 갖고 있는 차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다. 이런 성격의 행사는 세계 각지에서 수시로 열리며 수많은 애호가들이 자동차의 역사와 문화를 함께 즐기는 자리가 되고 있다.
행사 이름은 대개 행사가 열리는 지역이나 장소 이름이 붙는다. 대표적인 콩쿠르 델레강스로는 앞서 이야기한 이탈리아 빌라 데스테 뿐 아니라 영국의 살롱 프리베, 미국 페블비치와 메도 브룩, 아멜리아 아일랜드 등에서 열리는 것이 유명하다. 특히 페블비치 콩쿠르 델레강스는 1950년에 처음 열려, 미국에서 가장 긴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행사로 꼽힌다.
재미있는 사실은 지난해 열린 페블비치 콩쿠르 델레강스의 최우수 출품차가 올해 콩코르소 델레간차 빌라 데스테에서 골든 컵을 가져간 바로 그 알파 로메오 8C 2800B였다는 것이다. 소유주인 데이비드 사이도릭은 이렇게 해서 미국과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양대 클래식카 행사에서 모두 최고의 영예를 누리는 주인공이 되었다.
행사의 성격은 열리는 장소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의 대표적 콩쿠르 델레강스가 열리는 장소는 대부분 유명한 최고급 골프 코스이고, 다른 행사들도 대개 유서 깊은 건축물을 중심으로 하는 호텔이나 리조트 등지에서 열린다. 출품되는 차들이 세계 주요 클래식카 경매에서 적게는 수 억 원, 많게는 수백 억 원의 금액으로 거래되고, 그런 차들을 소유한 사람들은 대개 차를 여러 대 갖고 있는 수집가들이다.
엄청난 재력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수집품을 공개된 자리에 내놓는 만큼, 행사장도 그들의 라이스프타일에 걸맞은 곳으로 정해지는 셈이다. 물론 콩쿠르 델레강스가 부유층 또는 상류층의 사교 모임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단순히 ‘그들만의 리그’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멋진 차들의 경연대회이기는 하지만, 수상은 명예를 상징하는 것일 뿐 입상자들에게 따로 상금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일반 관람객 대상으로 판매하는 입장권 수익은 대부분 자선사업에 쓰인다.
대중과의 소통 기회도 빠지지 않는다. 페블비치 콩쿠르 델레강스가 세월이 흐르면서 지역 축제로 발전한 것이 좋은 예다. 페블비치가 있는 지역인 몬테레이에서 ‘몬테레이 카 위크(Monterey Car Week)’라는 이름으로 거의 한 주간 다양한 자동차 관련 행사가 열린다. 이처럼 콩쿠르 델레강스는 미국과 유럽에서 자동차 문화의 중요한 축 중 하나를 이루고 있다. 그 중심에는 오랜 자동차 역사를 바탕으로 클래식카의 가치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문화가 있다. 비록 콩쿠르 델레강스와 같은 화려한 행사가 아니어도, 더 많은 사람이 가치 있는 차들을 실제로 보며 느낄 수 있는 행사를 좀 더 우리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