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2009년 6월 23일 5만 원권 첫 발행 당시 지하경제가 더 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컸다. 한 온라인 쇼핑몰의 5만 원권 발행 전 개인금고 판매량은 월평균 30대 정도였는데, 발행 5년 후인 2014년에는 월평균 1500대로 늘었다. 발행 10년간 5만 원권의 누적 환수율도 50%에 그친다. 두 장 중 한 장은 어딘가 숨어 있다는 얘기다. 2011년 4월에는 전북 김제의 한 마늘밭에서 110억 원어치 5만 원권 돈 뭉치가 발견되기도 했다.
▷5만 원권은 첫 발행 당일에만 1조3000억 원이 인출됐고, 백화점업계가 화장품 의류 등 5만 원짜리 상품만 따로 모은 ‘5만 원 마케팅’을 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화폐금융박물관에 전시할 일련번호 1∼100번을 제외한 2만 번까지를 인터넷 경매로 팔 정도였다. 그 인기는 여전해 지난달 기준으로 5만 원권은 국내 시중 유통 금액의 84.6%(98조3000억 원), 장수로는 36.9%(19억7000만 장)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지폐다.
▷웬만한 직장인 월급이 3만∼4만 원이던 1970년대, 당시 최고액권이던 1만 원짜리 한 장의 가치는 어마어마했다. 연인과 영화 보고, 밥 먹고, 차를 마시고도 많이 남았다. 하지만 5만 원권이 나오면서 씀씀이 심리도 크게 바뀌었다. 특히 5만 원권은 경조사비를 올리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5만 원권 사용처는 경조금, 헌금, 세뱃돈 또는 용돈 등 개인 간 거래가 50.7%로 가장 많았다. 최근엔 10만 원권을 발행하자는 주장이 솔솔 나오고 있지만 선진국은 고액권을 없애는 추세다, 신용카드, 전자결제 등으로 인해 지하경제를 제외하곤 고액권의 역할이 점점 사라지는 추세를 감안해야 하지 않을까.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