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볼보이들은 경기 시작 5시간 전부터 선수들의 연습을 챙기고 경기가 끝난 뒤 마무리까지 전담한다. 뙤약볕 속에서 수많은 연습 타구를 처리하는 과정은 쉽지 않지만 젊은 볼보이들은 “야구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 행복하다”고 입을 모았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기자가 일일 볼보이로 안전장비를 설치하고 연습 공을 배치하고 타구를 처리하는 모습이다. 사진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프로야구 열기로 매일 후끈 달아오르고 있는 야구장에서 등번호 없는 유니폼을 입은 채 야구공을 쫓는 이들이 있다. 볼보이다. 이들은 각종 파울볼, 강습 타구 정리는 물론이고 연습시간 볼 수거까지 챙긴다. 볼보이는 각 구단이 매년 봄 공모를 통해 선발하는데 최근 경쟁률이 5 대 1을 넘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응모자는 대부분 야구에 관심이 많은 20대 대학생 등 젊은층이다. 이들은 “야구가 좋아 볼보이 아르바이트를 선택했다”고 입을 모았다. 어떤 매력에 끌리는 걸까.
두산 베어스 구단에 볼보이 체험 취재를 의뢰하자 “정말 괜찮겠느냐. 이걸 왜 하려 하느냐”는 반응이 돌아왔다. 일 강도가 센 데다 자칫 공에 맞아 부상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섞여 있었다. 기자가 어릴 적 리틀야구 경력을 들이밀자 그때서야 두산 측은 볼보이 유니폼을 내주었다.
배팅케이지 설치가 끝나면 투구 연습용 마운드를 설치하고, 야구공 박스를 곳곳에 배치했다. 야구공이 수백 개씩 들어 있는 박스를 몇 차례 옮기자 다리가 후들거렸다. 지켜보던 한 볼보이가 안쓰러운 듯 “제가 들게요” 하며 거들어줬다.
우익수 자리를 맡았다. 잠시 후 하늘에서 야구공들이 눈이 쏟아지듯 날아오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떨어지는 공을 주워 센터 자리로 던져주길 반복하다 보니 몇 분 지나지 않아 등줄기로 땀이 흐르고 오른쪽 어깨는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모두 같은 처지려니 생각했는데, 다른 볼보이들은 모두 프로 선수처럼 능숙하게 타구를 잡아내고 있었다. 허리를 굽혀 바닥에서 공을 줍느라 바빴던 건 기자뿐이었다.
쉬는 시간을 이용해 볼보이 대기실을 찾았다. 대부분 20대인 이들은 3~5년간 일한 ‘볼보이 프로’였다. 어릴 적부터 야구를 좋아했고 대학에서 체육학을 전공한다는 김태훈 씨(26)는 2014년부터 6년째 야구장을 누비고 있다. 그는 “좋아하는 야구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게 즐겁다”며 “틈틈이 사회인 야구팀 ‘드림메이커스’ 투수로도 활동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이어 “소속팀(두산)이 끝내기 승리를 거두는 순간의 쾌감은 정말 짜릿하다”며 “앞으로 야구단이나 스포츠 마케팅 쪽에 취직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두산 볼보이를 관리하는 이승우 신화안전시스템 실장은 “볼보이는 개인 일정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어 대학생들이 선호하는 아르바이트”라며 “일당은 하루 5시간 근무에 8만~9만 원 수준으로 직접 야구장에서 뛰는 행복감이 크다”고 소개했다.
두산 볼보이는 총 20여 명. 이 중 개인 일정에 따라 연습시간(훈련 보조)에 2명, 본경기(경기 지원)에 6명이 배당된다. 경기가 시작되면 좌우 외야 파울 지역에 한 명씩, 양 팀 타자 대기석에 2명씩 배치돼 파울볼 등을 처리한다.
볼보이는 배트보이도 겸한다. 일부 다른 구단은 배트걸도 운영한다. 심판에게 볼을 전달하고 타자가 타격한 뒤 던져놓은 방망이, 보호대 등 장비를 챙겨 더그아웃에 가져다 놓는 일을 맡는다.
볼보이는 경기가 끝나도 바로 퇴근할 수 없다. 다음 날 팀원들의 업무가 수월하도록 그물망 등을 창고에서 그라운드로 꺼내 둔 뒤에야 하루 일과가 끝난다. 등번호가 없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은 프로 선수에 못잖은 이들, 바로 볼보이들이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