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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자본잠식 막 벗어난 기업에도 엄격… 무섭고 참담”

입력 | 2019-05-04 03:00:00

한진重 통상임금 판결에 비상
“주52시간-최저임금 부담 이어 갈수록 기업하기 힘든 환경 조성”
현대重 등 판결앞둔 기업들 촉각




대법원이 3일 자본잠식 상태에서 겨우 벗어난 한진중공업에 통상임금을 재산정해 근로자에게 법정수당을 추가로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리자 재계는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현대중공업, 아시아나항공, 금호타이어, 현대미포조선 등 앞으로 통상임금 관련 대법원 판결을 앞둔 기업이 줄줄이 남아 있어 이번 판결의 여파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재계는 경영 상태가 최악에 빠진 기업에까지 ‘상대방의 이익을 배려해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권리 행사를 해서는 안 된다’는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이 적용되지 않은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한진중공업은 조선업 불황이 이어지면서 2016년 1월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맺고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올해 2월엔 필리핀 수비크 조선소의 적자가 3년간 누적되면서 자본잠식이 발생했다. 한진중공업 채권단이 3월 6874억 원에 달하는 채무를 출자전환해 상장 폐지를 가까스로 면한 상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재계 관계자는 “산소호흡기로 연명하고 있는 이런 회사에도 이렇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다니 무섭고 참담하다”며 “1, 2심에서 인정했던 경영상의 어려움을 3심에서 뒤집은 건 노동친화적인 사회 기류에 법원이 눈치를 보고 있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올해 2월에도 인천 시영운수 소속 버스 운전사들이 미지급 법정수당을 달라는 통상임금 소송에서 신의칙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어 같은 달 서울고법 역시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소송 항소심에서 사측이 근로자들에게 추가 임금을 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과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경영상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점차 기업 하기 힘든 환경이 조성되는 것 같다”며 “신의칙 적용 기준에 대해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명확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한진중공업 측은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 “법원 판단인 만큼 드릴 말씀이 없다”며 “노사가 합의를 통해 통상임금 미지급분을 줄여 기업 부담을 덜어내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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