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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갈등 유탄 맞는 기업들

입력 | 2019-04-29 03:00:00

혐한 기사에 한국소주 사진 노출뒤, 日판매량 반토막 나고 직원들 위축
징용배상 판결후 불매 움직임 커져… 정치갈등이 경제로 옮겨붙기 시작




한일 관계 악화에 따른 양국의 정치 갈등이 외교 안보 분야의 불협화음을 넘어 경제 분야로 옮겨붙을 조짐이 나오고 있다. 일본 소비자를 대상으로 제품을 판매하는 한국 중견, 중소기업 등이 직격탄을 맞기 시작했다.

진로소주의 일본 내 판매가 올해 초 급작스럽게 하락했다. 일부 품목의 매출은 절반 가까이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발단은 일본 시사주간지 슈칸분슌(週刊文春)이 1월 24일 자에 ‘한국 문재인 대통령에게 국제 수치(羞恥) 플레이를 (하자)’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으면서부터다. 슈칸분슌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배상 판결 등에 대한 보복 조치로 관세 인상을 검토했고, 수입품 중 한국 비율이 높은 진로소주와 김 등을 대상으로 거론했다.

이 기사는 문 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상호인 ‘JINRO’가 뚜렷하게 보이는 제품 사진을 실었다. 그 직후 일본 내 소주 판매가 타격받았다. 슈칸분슌 발행 부수는 약 68만 부로 30∼50대 직장 남성이 많이 본다. 소주의 주요 판매 대상 연령층과 일치한다. 권홍봉 진로재팬 사장은 “매출 하락도 문제지만 브랜드 가치 하락, 직원들의 사기 저하가 더 걱정이다. 영업은 사기로 먹고산다”고 말했다.

한국 식품회사에서 도쿄 지사에 파견된 한국인 A 씨는 최근 한 거래처를 갔더니 일본인 담당자가 자신을 20분간 복도에 세워 놓았다고 했다. 계속 기다렸더니 일본인 담당자는 대뜸 “문재인 너무한 거 아니냐”고 반말로 얘기했다고 한다. A 씨는 “순간 울컥했다. ‘내가 일왕 이름을 함부로 부르면 좋겠느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삼켰다”고 말했다.

문제는 앞으로 상황이 전방위적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한국인 강제징용 배상 소송의 피고인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 미쓰비시(三菱)중공업 등 일본 기업에 대한 자산 현금화가 이어지면 일본 정부는 본격적인 보복 조치에 나설 게 확실시된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 일본이 한국에서 투자 자금을 회수하자 미국, 유럽도 잇따라 자금을 뺐다. 그러면서 한국도 외환위기를 맞았는데, 현재 한국은 그때의 기억을 잊고 있다”며 “한일 관계 악화에 따라 한국이 치러야 할 비용이 일본에 비해 훨씬 크다”고 우려했다.

도쿄=박형준 lovesong@donga.com·김범석 특파원·문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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