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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길의 아름다운 약속…네팔 학생들에 ‘마이 드림’을 찾아주다

입력 | 2019-04-26 14:22:00


11일 네팔 카트만두 타멜파크호텔에서 열린 엄홍길휴먼스쿨 워크숍. 휴먼스쿨 관계자가 학교 운영 성공 사례 등을 담은 책자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2010년 1차 팡보체 휴먼스쿨이 개교한 이래 17개 휴먼스쿨 교장과 운영위원장이 한곳에 모인 건 처음이다. 엄홍길휴먼재단 제공

지난 11일부터 2박3일간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시내 타멜 파크호텔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엄홍길휴먼재단’이 세운 17개 휴먼스쿨의 교장과 운영위원장들이 첫 번째 워크숍을 가진 것. 휴먼스쿨은 이 재단이 2010년 팡보체 지역을 시작으로 네팔의 오지에 유명무실하다시피 방치돼 있던 공립학교를 헐고 최신식으로 건립한 학교다.

한국의 나눔·사회 공헌 관련 단체가 세운 현지 학교의 관계자들이 한 데 모인 건 처음 있는 일이라 네팔 교육부 고위급 인사와 저명한 교육학 분야 학자 다수가 워크숍 현장을 찾았다.

“저희 학교는 학생들이 매일 교사의 수업이 어땠는지, 또 지도 방법과 소통에 대해 어느 정도 만족하는지 교실에 붙여놓은 양식에 체크를 합니다. 처음에는 교사들이 반대를 했지만 지금은 학생, 교사 모두 만족하고 있어요. 교사들이 스스로 자질을 계속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12일 행사 둘째 날 첫 일정에 발표자로 나선 12차 휴먼스쿨(푸룸부)의 교장이 놀랄 만한 학교 운영 성공 사례 한 가지를 소개하자 장내가 술렁거렸다. 이어 나머지 학교들도 각자 의 성과를 경쟁적으로 알렸다. 9차 휴먼스쿨(마칼루) 교장은 “휴먼스쿨이 들어선 이후 마칼루 지역 주변 사립학교 한 개가 문을 닫고 130여명의 학생이 전학을 왔다”고 자랑스러워하면서 학교 발전의 의지를 다졌다.

지난해 12월 준공된 14차 휴먼스쿨(둘리켈) 교장은 워크숍 내내 학생들의 뿌리박힌 생활 습관과 인식을 바꿨다는 점을 알리느라 분주했다. 이 교장은 “학교가 건립된 이후 깨끗하게 사는 습관의 중요성, 또 성적 순위보다는 인성이 우선이라는 것에 관해 학생과 교사가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고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커리큘럼을 아예 정식 과목으로 만들었다. 14차 휴먼스쿨을 네팔의 대표 리더를 양성하는 명문 학교로 성장시키겠다”고 열의를 보였다.


● 네팔 오지 학생들에게 ‘마이 드림’ 찾아주다

이날 오후에는 휴먼스쿨을 졸업한 여학생 프레러나 쳐우더리(20)가 워크숍 행사장을 찾아왔다. 네팔 오지에서도 가장 낙후된 건지 지역에서 태어난 쳐우더리는 어린 시절 남들이 버린 책으로 글을 봤던 학생. 원대한 목표나 꿈을 그릴 형편이 안 됐다. 그렇지만 이 지역에 건립된 11차 휴먼스쿨에 다닐 수 있게 되면서 꿈이라는 것을 찾게 됐다. 현재는 네팔의 명문 사립대학인 만모한기념대학 간호학과에 재학 중이다. 쳐우더리는 “오늘은 환자의 기도에 파이프를 꽂아 죽 같은 음식물을 투입하는 실습을 했다”며 “대학을 졸업하면 1~2년 병원에서 근무한 다음 임상 경험을 살려 석사 과정을 밟고 싶다”고 웃었다. 세계적 인기를 얻고 있는 K-POP스타인 방탄소년단(BTS)의 팬이기도 한 쳐우더리는 한국의 대학에서 간호학을 더 심도 있게 공부하고픈 꿈도 있다.

엄홍길휴먼재단 이의재 네팔지부장(전 대한산악연맹 사무처장)은 “평생 먹고 사는 것을 걱정하던 ‘교육 사각지대’ 출신 학생이 나라의 인재가 되겠다며 학업에 집중하겠다는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 학생이 가는 길 자체가 휴먼스쿨이 지향하는 모델”이라고 말했다.

엄홍길휴먼재단은 앞으로 휴먼스쿨을 중심으로 한 외부 활동도 장려할 방침이다. 이 지부장은 “예를 들어 네팔의 경우 재학생-졸업생 또 졸업생 선후배 간의 네트워크가 상당히 약한 편인데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지역간 인재 교류를 활성화하는 차원에서 전체 휴먼스쿨 혹은 각 학교별로 동창회, 동문회를 설립하는 부분도 세밀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 네팔 출신 자문위원단, “휴먼스쿨을 네팔 교육 롤모델로 키울 것”

휴먼스쿨 안팎으로 실질적인 지원을 하고, 중·장기 혁신 계획을 설계하는 현지 자문위원회가 올해 꾸려진 것도 주목할만한 가시적인 성과다. 기존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도 명문이라는 공립, 사립학교에서도 볼 수 없는 전방위 지원 체계다.

현재 자문위원 5명이 위원회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 이들은 엄홍길 대장과는 오랜 인연으로 현지의 교육, 문화 관광, 요식, 항공 사업 등에서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 특히 네팔 교육계의 거물인 겅가랄 뚜라덜 전 네팔 교육부장관이 자문위원으로 전격 가세한 건 크게 화제가 됐다. 겅가랄 전 장관은 네팔 교육계가 그동안 간과했던 전문 인재 양성 등과 관련해 각 휴먼스쿨이 선도적으로 시도하는 기반 작업을 사실상 총 지휘하고 있다.

겅가랄 장관은 “네팔 교육은 열정은 크나 세계 추세를 외면하고 있다. 11~12학년(한국의 고교 2~3학년) 때까지 만족스러운 교육을 못 받으니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 중동 지역 등으로 나가 단순하게 힘으로 돈버는 일만 하고 있다”며 네팔 교육의 현실을 냉정하게 진단했다. 그는 “돈을 몇 명이나 버는지 숫자가 전부가 아니다. 이제 무엇이 맞고, 틀린지 특정 사안에 대해 정확하게 해석하고 비판할 줄 아는 인재를 일찌감치 길러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연쇄적으로 대학의 경쟁력도 상당히 떨어져 있다고 짚었다. “네팔 최고의 명문인 트리부반 대학도 20년 전에는 한국의 서울대처럼 유명했지만 지금은 아니다”는 그는 “하버드, 캠프리지 등 세계적으로 존경받은 대학처럼 우리도 그렇게 가야한다. 최소한 네팔에서 석, 박사를 한 학생이 한국, 마국에서 해당 전문 분야 강의를 받을 수 있는 수준까지 돼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어릴 때부터 잘 관리된(Managed) 기본 교육과 전문적인(Something Extra) 교육을 받는 게 필수다. 만약 수학에 재능 있는 학생이 흥미를 잃고 다른 분야로 관심을 돌리려 할 때 학교는 어떻게 해야 될까.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 많아야 한다. 휴먼스쿨이 이 숙제를 풀고 있는데 아마 네팔 교육의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 함께 네팔 교육의 돌파구를 보다

언급한대로 네팔 교육의 한계는 학생들이 어릴 때부터 자신의 삶을 개척하면서 지역 사회와 국가에 기여하는 ‘선순환’을 기대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번 워크숍 행사에 네팔 교육 분야 정부 인사와 학자들이 대거 참석해 강의를 자처하고 성공 사례를 경청한 것도 휴먼스쿨을 통해 뭔가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첫 날 오후 강의를 준비해 나선 두르버 라즈 레그미 네팔 교육부 부부차관(국제부장)은 각 학교의 교장들에게 “학교만의 커리큘럼을 만든 교장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다가 대다수가 손을 들자 깜짝 놀랐다. 마을에 밤부나무(대나무)가 많다는 학생 얘기에 곧바로 나무로 바구니와 식기를 만드는 커리큘럼을 만들었다는 한 교장의 말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는 “네팔 기존 학교와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는 자체가 신선하다. 당장 필요하면서도 전문적인 배움의 기회를 계속 제공하겠다는 자세는 네팔 교육계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할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둘째 날 행사에 참석한 디 퍽 설마 교육부 부차관(교육인재본부 부본부장)도 학교 발전 계획을 어떻게 설계할지 휴먼스쿨 교장들과 토론을 하다 그들의 철학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네팔에서 절실한 교육 플랜이란?” 질문으로 답변을 유도하던 그는 “교사, 학부모가 학생들의 꿈을 찾아주는 것”이라는 한 교장의 말을 듣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겅가랄 전 장관은 “학생들을 중심에 놓고 교육을 하면 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학생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됐다”고 했다. 그는 “현재 국가 총 예산의 10%를 교육에 쓰고 있는데 앞으로 17%까지 늘려야 하고, 특히 네팔의 강점인 수력 발전과 농업, 관광 분야 인재 양성에 투자를 집중해야 된다는 소신을 휴먼스쿨 워크숍을 통해 더 굳건히 하게 됐다. 향후 10년간 휴먼스쿨의 내실을 다지겠다고 약속한 엄 대장이 나에게 목표를 줬다. 감사하다”며 첫 워크숍의 소감을 전했다.



카트만두=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