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서 공 넘긴뒤 5개월간 논의… 노동계-재계-가입자 계속 평행선
경사노위 산하 국민연금개혁특위는 12일 전체회의에서 노동계와 경영계, 청년, 연금 가입자 대표들에게 각각 소득대체율(은퇴 전 평균 소득 대비 연금액의 비율)과 보험료율(월급에서 보험료가 차지하는 비율)을 어떻게 조정할지 의견을 수렴했다.
17일 동아일보가 입수한 이날 회의록에 따르면 노동계 대표인 한국노총은 소득대체율을 현행 40%에서 50%로 높이고,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2∼13%로 인상할 것을 주장했다. 반면 경영계는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을 현행대로 유지하자고 맞섰다. 청년 대표 2명과 가입자 단체 대표 4명은 각기 다른 수치를 제시했다.
하지만 이때 국민연금 개편안이 나온다고 해도 21대 총선이 9개월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국회 논의를 기대하긴 힘들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특위의 한 위원은 “애초 정부와 국회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경사노위에 연금 개편 논의를 떠넘긴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예정됐던 연금 개편안의 국회 제출 시한을 미룬 채 “경사노위 의견을 반영하겠다”며 연금특위를 출범시켰다.
▼ 소득대체율 논의 한발짝도 못나가… ‘빈손’ 불보듯 ▼
29일 활동 종료 앞둔 연금특위
“기초연금을 소득 하위 80% 노인에게 월 34만 원씩 줘야 한다.”(한국노동조합총연맹)
“현행(소득 하위 70%에 월 25만∼30만 원)도 지속가능성이 낮다.”(한국경영자총협회)
12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산하 국민연금개혁특위 전체회의에서 노사 대표가 벌인 논쟁이다. 특위에 노동계 대표로 참석한 한국노총은 국민연금 제도 개편 합의문에 반드시 65세 이상 노인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을 인상하는 방안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경영계는 노인 인구가 급증하고 부양 인구는 줄어드는 상황에서 기초연금을 지금보다 인상하는 건 비현실적이라고 맞섰다.
참석자들은 △국민연금을 일정액 이상 받는 사람은 기초연금을 깎는 현행 제도를 폐지할지 △연금 지급을 국가가 보장한다는 내용을 법에 담을지를 두고도 합의하지 못했다. 노사뿐 아니라 대한은퇴자협회와 한국여성단체연합, 소상공인연합회 등 참석자들의 의견이 제각각 갈려 좀처럼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지난 5개월간 15차례나 회의를 했지만 특위에 참여한 노사나 연금 가입자 대표들의 견해차는 평행선을 달렸다. 특위는 19일과 26일 두 차례 회의를 더 연 뒤 29일 활동을 종료할 예정이다. 결국 정부가 연금 개편 논의를 경사노위로 넘긴 지난 5개월은 허송세월이 될 가능성이 큰 셈이다. 특위 활동을 7월 말까지 연장할 수 있지만 장지연 특위위원장(한국노동연구원 부원장)은 “원래 기한 내에 논의를 마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위원들 사이에서도 “활동 기한을 연장한다고 합의가 되겠느냐”는 회의론이 팽배하다.
연금 개편 논의가 21대 국회로 넘어가면 합의는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초저출산 현상에 따라 보험료를 올려야 하는 폭이 더 늘어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통계청의 2016년 장래인구 추계를 반영해 지난해 8월 국민연금 장기 재정 전망을 내놓았다. 당시 복지부는 연금기금이 2057년 고갈된다고 전망하며 연간 적자 폭을 2060년 327조4960억 원, 2070년 467조3340억 원, 2080년 567조4910억 원 등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특위 공익위원인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가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새 인구 추계를 반영해 다시 계산해 보니 기금 고갈 시점은 2057년으로 동일했지만 연간 적자 폭은 2060년 343조9790억 원, 2070년 496조4370억 원, 2080년 622조1290억 원 등으로 크게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되면 기금 고갈 이후 보험료율을 대폭 올려야 해 미래 세대의 부담이 커진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국회가 노사 등 이익집단에 연금 개편 논의를 맡긴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지적한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전적 이해관계가 직접적으로 걸린 당사자들이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박은서 clue@donga.com·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