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日 새 연호는 ‘令和’… 中고전 아닌 日문헌서 첫 인용

입력 | 2019-04-02 03:00:00

‘각자의 꽃을 크게 피우자’는 의미… 새 일왕 취임 내달 1일부터 쓰여
연호 사용은 세계에서 日 유일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이 1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새 연호 ‘레이와(令和)’를 발표하고 있다. 레이와는 다음 달 1일부터 사용된다. 아사히신문 제공

5월 1일 126대 일본 국왕으로 취임하는 나루히토(德仁·59) 왕세자의 연호(年號)가 ‘레이와(令和)’로 결정됐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꽃을 크게 피우자’는 뜻이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은 1일 “아키히토(明仁·86) 일왕이 쓰는 현재 연호 ‘헤이세이(平成·1989년 1월∼2019년 4월)’의 뒤를 이을 새 연호로 ‘레이와’를 택했다”고 밝혔다.

연호는 특정 시점을 기준으로 햇수를 헤아리는 방식이다. 한자 문화권에서 보편적이었으며 일본에서는 645년 고토쿠(孝德) 일왕의 연호인 다이카(大化) 때부터 쓰였다. 이번이 248번째다. 19세기 메이지유신 이후 일왕 1명이 단 1개의 연호만을 쓰는 ‘일세일원(一世一元)’ 제도가 보편화됐다. 연호는 현재 일본만 유일하게 사용한다. 일본 관공서, 은행 등에서는 예수 탄생을 기준으로 하는 ‘서기(西紀)’만큼 일왕의 연호가 많이 쓰인다. 일본 정부는 갑작스러운 연호 변경이 국민 생활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보고 즉위 한 달 전 연호를 미리 발표했다. 현 연호 ‘헤이세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다음 달 1일 0시부터 사용될 새 연호에 대비할 시간을 준 셈. 일본 정부는 유명 학자들로부터 새 연호 후보를 받아 3∼5개로 추린 후 각료 회의에서 최종적으로 선정했다.

‘레이와’는 7, 8세기 일본 전통시가를 모은 만요슈(萬葉集)에서 따왔다. 만요슈 서문에 ‘초봄 영월(令月·상서롭고 좋은 달)에 바람은 부드럽고(風和), 매화는 거울 앞에 하얗게 피었으며 난초는 향을 피운다’는 내용이 있다. 이 중 ‘레이(令)’와 ‘와(和)’를 한 글자씩 따서 만들었다. 첫 글자인 레이(令)는 일본 연호에서 처음 쓰였다. 와(和)는 앞서 나루히토 왕세자의 조부인 히로히토 일왕의 연호 쇼와(昭和·1926∼1989)와 와도(和銅·708∼715) 등 총 19번 사용될 정도로 자주 사용된 단어다. 이번에 20번째 사용되는 것이다. 다만 새로운 조어로 일본어에 ‘레이와’란 단어가 없어 일각에서는 “낯설다”는 반응도 보인다.

일본이 중국 고전이 아닌 전통 문헌에서 연호를 인용한 것은 최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지지층인 보수 세력은 그간 ‘연호에서 중국 색을 빼자’고 강하게 주장해 왔고 정부가 호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아베 총리는 “강추위 후 봄이 왔음을 알리는 매화꽃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의 일본인이 내일에 대한 희망과 함께 각자의 꽃을 크게 피울 수 있다”며 “그런 일본이 되고 싶다는 소원을 담아 연호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새 연호에 전 일본이 들썩였다. 도쿄 시부야의 대형 전광판 등을 통해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은 일제히 박수를 쳤고 일부는 감격에 겨워 눈물까지 흘렸다. 총리 관저의 트위터 중계는 46만 명, 공영 NHK방송의 유튜브 중계는 21만 명이 지켜봤다. 아사히, 요미우리 등 주요 일간지도 일제히 호외를 발행했다. 레이와를 표기한 캔디와 달력 등 ‘연호 마케팅’ 상품도 쏟아졌다. 일왕 취임을 전후로 27일부터 5월 6일까지 일본에서는 황금연휴가 이어진다. 일각에서는 새 연호 사용 및 황금연휴 등으로 수조 원에 이르는 내수 진작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