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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일상의 중력 떨치고 꿈을 향해 한 걸음 더

입력 | 2019-02-16 03:00:00

◇중력/권기태 지음/456쪽·1만4800원·다산책방




꿈과 일상 사이에서 갈팡거리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다. 같은 일을 하는 이들 간 흔한 시기와 흠모를 다룬다. 월급쟁이로 살든, 꿈을 좇아 살든, 지나고 보면 그저 아름다운 꽃시절을 다독인다.

권기태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중력’은 일상의 중력을 떨쳐내려는 이들을 내세운다. 2006년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했던 한국인 최초 우주인 선발 대회를 소재로 택했다. 어쩔 수 없이 책장을 넘기는 내내 누군가의 이름과 얼굴이 떠오른다. 소설이되 드라마와 다큐멘터리처럼 다가와 더 술술 읽힌다.

어린 시절 과학 잡지에서 본 화성 사진에 매료된 이진우. 소년의 가슴에는 인장처럼 우주인의 꿈이 새겨진다. 꿈은 꿈일 뿐, 현재 그는 두 아이의 아빠이자 최하의 인사 고과로 궁지에 내몰린 직장인. 딴짓한다며 쏟아지는 눈총에 질세라 우주인 선발 테스트에 온 힘을 쏟는다.

또 다른 주인공 김태우. 두 사람은 한눈에 서로가 가장 강력한 라이벌임을 알아본다. 둘은 모든 면에서 극과 극이다. 이진우는 꿈을 접은 채 안분지족해온 반면 김태우는 걸어온 모든 길이 우주인을 향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선망하는 우주인도 암스트롱과 올드린으로 각각 다르다.

“사실 암스트롱은 미안했던 거예요. …그래서 (인간적인) 암스트롱을 좋아해요.”(이진우)

“(버즈 올드린은) 좀 이기적이고 지기 싫어했지요. 하지만 다들 그러지 않았을까요? 매일 경쟁인데.”(김태우)

꿈을 쟁취할 단 하나의 티켓. 두 사람을 비롯해 유일한 여성 후보 김유진, 심리학도 출신의 사업가 정우성이 ‘어울리며 경쟁하는’ 상황은 피를 말린다. 생업을 포기하고 날아온 러시아 우주기지에서 승리와 패배, 고매함과 천박함, 우정과 배반 사이를 하루 열두 번씩 오간다. 설상가상, 우주의 사회생활은 더 ‘빡세다’. ‘우주에 몇 번 다녀왔고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선장이나 비행 엔지니어를 했는지, 아니면 임무 전문가나 실험과학자였는지’에 따라 서열이 나뉜다.

한때 대기업 부장으로 떵떵거리던 아버지는 아들 이진우에게 시들하게 말한다.

“나도 말이야. 젊을 때는 미국이나 영국에 한번 가보고 싶었어. 꿈같은 일이었지.”

아버지의 생을 내려다보는 작가는 ‘봉급쟁이의 삶이란 지나간 다음에야 꽃 시절인 줄 아는 것. 퇴직하고 나면 벼랑의 낙화처럼 급전직하한다’고 읊조린다.

권기태 작가는 “소설 제목 ‘중력’은 물리적인 중력, 현실의 무게, 인간의 운명 등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했다. 다산책방 제공

작가는 “단순한 우주인 선발 이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꿈을 실현해 보려는 삶의 어려움과 희망에 대해 쓰고 싶었다”고 했다. 일상을 가꾸고 키우며 고속 질주하다 보면 어느덧 사회 중견. 이따금 꿈꾸던 이상에 눈 돌리지만 세속에서 발을 빼지 못하는 절대다수의 고민을 그러모았다. 어느 쪽이 옳다 정답을 흘리지 않아 담백하다. 우주인 선발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내공이 생동감 있게 넘친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