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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행복한 가정 꾸린 순간에 맞닥뜨린 뜻밖의 불행

입력 | 2019-02-02 03:00:00

◇엿보는 자들의 밤/빅터 라발 지음·배지은 옮김/612쪽·1만5000원·현대문학




무한 반복해 돌려보던 초음파 영상 속 생명체가 품에 안긴다. 뜨끈하고 물컹한 그것이 울음을 터뜨리며 목젖을 파르르 떤다. 부모가 된 이들이 인생의 하이라이트로 꼽는 출산의 순간이다.

주인공 아폴로도 이런 환희의 순간을 맞는다. 아이의 이름은 브라이언. 고된 육아로 인생의 장르가 로맨스에서 어드벤처로 바뀌긴 했지만 그럭저럭 따스한 나날이 이어진다. 그런데 돌연 그는 비극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아내 에마가 생후 6개월 난 아들의 얼굴에 펄펄 끓는 물을 끼얹은 것. “저건 아기가 아니야.” 이 말을 마지막으로 아내는 홀연히 사라진다.

인종 계급 육아 교육…. 소설 앞부분은 현실 문제를 적절한 깊이로 파고들며 흥미를 돋운다. 아폴로는 우간다 출신 이민자 어머니 아래서 성장한다. 네 살 때 사라진 아버지의 부재는 성인이 된 후에도 채울 수 없는 구멍으로 남는다. 독서로 마음의 빈자리를 채우던 그는 고서적 수집상을 직업으로 삼는다.

소설 중반에는 사회문제를 깊이 파고들려는 건가 싶었다. “잠을 제대로 못 자고 보낸 6개월은 잠들지 못하고 보내는 3개월과는 확연히 다르다. 일단 정신이 질퍽질퍽해진다.” 아이를 기르는 일의 무게와 육아 분담 문제를 길고 세심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품은 이내 환상의 장을 펼치며 반전을 선보인다. “가서 약이나 먹어라”라고 타박했던 에마의 말대로 브라이언은 그들의 아기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이제 모든 걸 공유하지. 아이들을 데리고 나간 놀이터를 공유하고 몇 시에 나갔는지도.” 온라인에 전시된 아기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트롤들이 아기를 바꿔치기한 것이다.

육아는 유년 시절을 한 번 더 겪게 하는 축복 또는 고통이다. 이 지점을 영리하게 포착한 소설이다. 아폴로의 유년시절에 얽힌 비밀과 현재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이야기의 밀도를 더한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