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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신현준]의료용 대마 허용범위 엄격 제한해야

입력 | 2019-01-22 03:00:00


신현준 하버드의대 내과 강사

필자는 1990년대 중반 의대생 시절 영어 원서 ‘해리슨의 내과학 원리’ 12판을 공부했다. 지금은 20판이 나왔고 그 사이 많은 내용이 바뀌었다. 30년 전 교과서 내용은 이미 쓸모없는 지식이 된 경우가 많다. 최신 교과서도 첨단 의학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기 어려워 이제는 온라인으로 진료 지침을 체크해야 최선의 진료가 가능하다.

최근 대한한의사협회에서 1610년에 작성된 동의보감을 인용해 마리화나(대마)의 한의학적 사용을 합법화하자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동의보감 등 한의서에서 대마는 정신을 안정시키고 눈을 밝게 하며, 기억력 향상 및 딸꾹질, 타박상, 마비 증상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기록돼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증상에 만병통치약처럼 대마를 처방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학업 성적 상승, 시력 향상 등을 위해 대마를 처방받고 싶은 사람들이 한의원에 몰릴 것이고, 대마를 재배하는 회사의 매출은 급증할 것이다.

그러나 대마를 의료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경우는 극히 제한적이다. 기존 비마약성 치료제보다 효과가 우월하다는 것도 입증되지 않았다. 대마 성분 중 하나인 카나비디올은 인지 장애, 뇌발달 저해 가능성 등 부작용 우려가 있지만 아동의 난치성 뇌전증 등 특수한 경우에 한하여 처방할 수 있도록 의료용 대마 사용이 한국에서 최근 합법화되었다. 하지만 이에 편승해 400년 전 집필된 동의보감을 근거로 대마를 무분별하게 허용하라는 주장은 무책임하다.

대마는 마약류로 분류되는 향정신성 약물이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의 2016년 보고서에 따르면 대마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약 1억8000만 명)되는 불법 약물이다. 특히 청소년의 피해가 크다. 미국은 고등학생 중 1학년 15%, 3학년 21%가 최근 한 달 내에 대마를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대마 장기 사용 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은 학업 및 업무 능력 저하, 사회성 감소, 운전 시 사고 위험 급증 등이다. 정서 장애, 정신 질환 등과도 연관된다. 대마 장기 사용 후 이를 끊을 시 짜증, 분노, 불안정, 수면 장애, 근육 경련 등의 금단 증상이 나타난다.

메릴랜드의대 데이비드 거렐릭 교수의 최신 리뷰에 따르면 동의보감의 주장과는 반대로 대마는 기억력을 감퇴시키며, 시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대마가 남용되면 대마 재배 회사들에게 잠시 이익이 있겠지만 중국에서 대량으로 재배된 싼값의 저질 대마가 한국에 대량 유통될 것이다. 이 경우 경제 효과는커녕 많은 사회적 문제가 예상된다.

따라서 의료용 대마 합법화 취지에 맞게 대마는 극히 제한적인 경우에만 허용되어야 한다. 1610년에 작성된 동의보감의 내용을 바탕으로 대마를 무분별하게 유통해 국민, 특히 청소년의 건강을 위협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신현준 하버드의대 내과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