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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정세진]카를로스 곤의 추락

입력 | 2018-11-24 03:00:00


1911년 설립돼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닛산은 도요타, 혼다와 함께 자동차왕국 일본의 자존심이다. 안이한 경영에 1990년대의 장기 불황이 겹쳐 1조4000억 엔의 부채를 지고 프랑스 자동차회사 르노에 대주주 자격이 넘어갔다. 카를로스 곤 당시 르노 부사장이 점령군 사령관처럼 일본 닛산에 파견됐다. 그는 전체 직원의 14%인 2만1000명을 감원하고 5개 공장을 폐쇄하는 등 일본 기업문화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닛산은 2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고 곤 회장은 일약 일본은 물론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경영자로 떠올랐다.

▷이후 19년 동안 르노닛산그룹의 절대자로 군림하던 카를로스 곤 회장이 19일 하네다공항에서 일본 검찰에 전격 체포됐다. 주요 혐의는 5년간 보수를 50억 엔 줄여 신고해 탈세를 했다는 것. 체포 당일 사이카와 히로토 닛산 사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곤 회장의 입장을 옹호하는 대신 해임 절차를 밟기 위한 이사회를 즉각 소집하겠다고 밝혔다. 파이낸셜타임스, 뉴욕타임스, 르몽드 등 주요 외신은 일본인 경영진의 쿠데타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르노의 대주주는 지분 15%를 보유하고 있는 프랑스 정부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올 2월 곤 회장을 연임시키면서 르노와 닛산을 하나의 회사로 합병시킬 것을 요구했다. 일자리 하나가 아쉬운 마크롱 대통령으로서는 합병을 통해 닛산의 생산물량을 르노로 가져와 프랑스 국내의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당초 합병을 반대하던 곤 회장은 9월 닛산 이사회에서 사실상 합병을 제안했고 닛산 일본 경영자들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일본 검찰이 파악한 곤 회장의 개인 비리 내용도 곤 회장을 몰아내기 위한 닛산 내부의 제보라는 설이 유력하다. 일본 언론은 카를로스 곤 회장이 회삿돈으로 이혼소송 비용을 지불했다느니, 호화 주택을 구입했다느니 하는 식으로 연일 탐욕스러운 경영자로 몰아세우고 있다. 하지만 곤 회장의 갑작스러운 추락은 자동차산업의 주도권과 자국 내 일자리를 놓고 프랑스와 일본 사이에 벌어진 불꽃 튀는 물밑 싸움의 소산이라는 분석이 많다.
 
정세진 논설위원 mint4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