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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 접고 대학로 시대 여는 ‘시인의 책방’

입력 | 2018-11-20 03:00:00

시집 전문 서점 ‘위트앤시니컬’
비싼 임대료에 밀려 혜화동 이전, 65년 전통 동양서림 2층에 새둥지




서울 종로구의 서점 ‘위트앤시니컬’에서는 게릴라 시낭독회 ‘마이크 테스트’(가제)를 비롯해 여러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서점 주인인 유희경 시인은 “시란 비타민C처럼 우리 몸에 적정량이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서점 오픈합니다!”

15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 ‘동양서림’ 앞 인도에서 앞치마를 두른 채 낙엽을 쓸던 유희경 시인이 손목시계를 확인하곤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긴 다리로 휘적휘적 걸어가더니 동양서림 가운데 난 나선형 계단을 밟았다.

다락방에 오르는 기분으로 2층에 들어서면 아담하게 꾸민 39.6m²(약 12평) 공간이 나타난다. 두 개 벽면에 늘어선 책꽂이에는 시집들이 가지런히 진열돼 있고 다른 한쪽에는 시를 읽거나 대화할 수 있도록 기다란 나무 책상과 의자 8개가 놓여 있다. ‘신촌 시대’를 마감하고 이날 ‘혜화 시대’를 시작한 시집 전문 서점 ‘위트앤시니컬’이다.

“서점 안에 또 다른 서점이 있다”는 얘기에 사람들이 하나둘 2층으로 연결되는 동양서림 안쪽 나선형 계단을 기웃거렸다. 서점 주인인 유 시인은 신이 나서 방문한 이들에게 떡과 귤을 건넸다. 이날 ‘위트…’의 1호 손님인 신영선 씨(41)는 “시를 읽는 사람과는 회사에서 오가는 말과 다른 종류와 밀도의 참신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며 “서점의 이사 소식에 서점과 대학원, 집 사이 이동 경로부터 파악했다”고 했다. 4년 전 산후우울증을 문학으로 극복했다는 신 씨는 1년 전부터 ‘위트…’의 단골이 됐다.

‘위트…’는 2016년 6월 경의선 신촌역 앞에 문을 열었다. 전례 없는 시도에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지만 월평균 900권이 넘는 시집이 팔리며 시 마니아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지난달 28일 문을 닫아야 했다. 서점과 자리를 공유하던 카페 파스텔이 월 400만 원이 넘는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동양서림으로부터 ‘러브콜’이 왔다. 두 서점의 사정을 잘 아는 황인숙 시인이 다리를 놓았다. 동양서림은 부산 피란길에서 돌아온 장욱진 화가의 부인 이순경 씨가 1953년 문을 열었다. 1987년부터는 이 씨와 함께 서점을 운영해 온 최주보 씨가 명맥을 이어왔다. 서울시 미래유산으로도 선정됐지만 한산했다. 아버지 최 씨로부터 서점을 넘겨받은 소영 씨는 “사람들로 북적댔으면 좋겠다. 그 전에는 혜화동에 혼자 덩그러니 있는 것 같아 힘들었다”며 웃었다.

숱한 어려움에도 꿋꿋이 살길을 찾고, 그들을 지지하는 이들에게서 응원을 받는 두 서점은 왠지 문학의 운명을 닮았다. 나오는 길에 돌아보니 흰 바탕에 녹색 글자로 된 동양서림의 오래된 간판 아래 ‘서울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서점 동양서림과 위트앤시니컬이 함께 백년의 역사를 가진 서점을 꿈꾼다’는 플래카드가 펄럭이고 있었다.
 
조윤경 기자 yuniqu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