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냉면 목구멍’ 이어 “배 나온 사람”… 北 리선권의 막말 릴레이

입력 | 2018-11-05 03:00:00

南인사에 잇단 무례한 발언




리선권

김태년 의장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10·4선언 11주년 기념식’ 참석차 방북한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정책위의장을 향해 “배 나온 사람한테 예산을 맡기면 안 된다”고 말한 것으로 4일 알려졌다.

9월 평양 정상회담 후 오찬장에서 대기업 총수들에게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라고 해 논란을 일으킨 데 이어 이번엔 여당 핵심 인사에게까지 막말을 던진 것. 일각에선 농담 수준을 넘어선 리선권 특유의 거친 언사가 남북 경협에 악영향을 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 리선권, ‘냉면 목구멍’에 이어 ‘복부 비만’ 막말

4일 민주당과 통일부에 따르면 리선권은 지난달 5일 10·4선언 기념 공동행사 후 평양 고려호텔 만찬에 참석해 이해찬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인사들과 식사를 했다. 우리 측 인사가 리선권에게 김태년 의장을 소개하자 “(굶주린) 인민을 생각하면 저렇게 배가 나오는 부유한 사람이 예산을 맡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는 것. 리선권은 초면인데도 불구하고 김 의장의 넉넉한 풍채를 보고 ‘배 나온 사람’이란 말을 면전에서 내뱉은 것이다.

김 의장과 민주당 인사들은 이 말을 술자리 농담 정도로 여기고 웃어넘긴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만찬에 참가한 한 민주당 인사는 “(리선권이) 곧이어 자신도 배가 나왔다는 식으로 말해서 당시엔 아무 문제 없이 웃고 지나갔다”고 상황을 전했다.

김 의장은 4일 고위 당정청협의 후 기자들이 리선권 발언의 진위를 묻자 “본질을 흐리는 말을 하지 말라. 자꾸 가십을 만들어내지 말라”고 말했다. 리선권 발언이 확산되면 남북 관계에 영향을 줄 것을 우려한 것이지만, 동시에 리선권의 해당 발언 자체는 부인하지 않았다.

리선권의 막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리선권은 ‘냉면 목구멍’ 발언 말고도 지난달 5일 고위급회담에서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약 3분 지각을 하자 “자동차라는 게 자기 운전수를 닮는 것처럼, 시계도 관념이 없으면 주인을 닮아서 저렇게…”라고 면박을 주기도 했다.

○ 사전 계획된 발언인 듯

리선권은 올해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북측 단장으로 나서 대남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선봉에 섰다. 군 출신인 그는 천안함 폭침 사건의 배후로 알려진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의 ‘오른팔’이지만 출신 배경은 더 좋아 김영철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6년 남북 장성급회담부터 회담 대표를 맡아 대남 협상에 익숙하다.

이런 까닭에 리선권의 막말들은 갑자기 튀어나온 일회성 농담이라기보단 한국 측을 압박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됐다는 평가가 많다. 남북 관계에 속도를 내기 원하는 북측이 리선권을 통해 여당이나 재계에 직접적인 불만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정치적 논란에도 리선권이 막말을 이어가고 있는 건 결국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암묵적 동의가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은 “과거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말을 들어보면 북측에서는 치밀하게 역할 분담을 해서 협상을 이끌어간다. 이번에는 리선권이 ‘배드 캅’ 역할을 맡아 남측 주요 인사들을 윽박지르고 압박하는, 정교하게 계산된 발언들을 쏟아내는 것 같다”고 했다.

‘냉면 목구멍’ 발언의 진화에 나섰던 정부는 또 다른 ‘리선권 악재’가 터지자 대응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정부 당국자는 “전체적으로 발언 맥락과 의도를 파악하려고 노력 중이다. 우리 쪽도 (비공개적으로) 북측에 할 말은 하고 있다. 정부가 저자세라는 일련의 지적은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자유한국당 윤영석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정부는 리선권의 일련의 행위에 대한 사과를 받아내고 북한 당국이 리선권을 교체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인찬 hic@donga.com·유근형 기자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