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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식의 뫔길]총무원장 원행 스님의 초심

입력 | 2018-10-18 03:00:00


인도 부다가야 마하보디 사원의 보리수 아래 명상 중인 순례자들. 부다가야=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14일 찾은 인도 북동부 비하르주의 부다가야는 깨달음의 땅이다. 2500여 년 전 고행으로 쇠약해진 싯다르타는 네란자라강에서 목욕을 한 뒤 수자타의 우유죽 공양을 받는다. 기력을 회복한 그는 보리수 아래 깊은 명상에 들었고 마침내 생로병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깨달음을 얻는다. 인류를 위한 위대한 깨달음을 얻은 이, 그는 최초의 부처다.

이날 오후 부다가야의 마하보디 사원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 사원은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자리에 세웠다는 높이 52m의 피라미드형 대탑을 중심으로 조성됐다. 대탑에 봉안된 불상을 참배하는 긴 행렬에는 승속(僧俗), 나이, 피부색이 따로 없었다. 참배를 마친 이들은 대탑과 보리수 주변을 돌며 탑돌이를 했다. 몸이 피곤해지면 난간 한쪽 또는 풀밭 어딘가에 앉아 명상에 잠겼다.

현재의 보리수는 부처 당시 그 나무는 아니다. 부처의 깨달음을 지켜본 보리수가 1876년 폭풍으로 쓰러진 뒤 그 고목에서 싹이 나와 자라났다고 한다. 사원을 발굴한 영국 고고학자 알렉산더 커닝엄이 부처 당시 보리수와 인연이 있는 스리랑카 사원의 것을 옮겨 심었다는 설도 있다.

아들 보리수든 손자 보리수든, 그늘의 품은 수십 m에 이를 정도로 넓고 여유롭다. 한쪽에서는 30여 명이 앉아 독송에 맞춰 기도하고, 다른 쪽에서는 이방의 한 승려가 온몸을 던지는 오체투지(五體投地)로 부처를 맞아들였다.

이들이 간절하게 기도하며 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개인적인 마음의 평안일까. 정작 부처는 깨달음 뒤에도 열반에 들지 못하고 고해(苦海)에 빠진 중생을 위해 40여 년간 가르침을 전했다. 수백 km라도 걸어서 그 깨달음을 전하는 걸 마다하지 않은 ‘길 위의 부처’였다. “부처님은 찾아가는 서비스의 원조”라는 가이드의 우스개를 귓등으로 흘릴 수 없었다.

여러 논란 끝에 9월 28일 원행 스님(65)이 제36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으로 선출됐다. 전 총무원장 설정 스님과 관련해 출가자에게는 가당치도 않은 숨겨 놓은 자식 논란이 이어졌고, 기득권 세력을 비판하는 전국승려대회와 이에 맞서는 교권수호대회가 치러졌다. 선거를 앞두고 종권(宗權)을 둘러싼 갈등은 극에 달했고, 그럴수록 불교를 대하는 사회의 시선은 차가워졌다.

원행 스님이 당선 직후 기자회견에서 밝힌 세 가지 과제는 승가 복지와 종단 화합, 사회적 책임이다. 화합과 소통을 위해 열린 자세를 강조한 것도 종단의 분열상에 비춰볼 때 바람직하다.

누구의 목소리에 특히 귀를 열어야 하나. 신임 총무원장은 진정한 종단화합을 이루고 추락한 불교 위상을 되찾기 위해 무엇보다 반대편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원행 스님의 득표율은 전임 설정 원장과 비슷한 약 74%였다. 하지만 이 선거는 선거인단 315명의 간선제로 치러진 데다 나머지 세 후보가 기득권 세력의 특정 후보 지원을 이유로 사퇴해 공정성과 대표성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원행 총무원장은 무효표로 처리된 26%뿐 아니라 직선제를 요구하며 선거를 거부한 그룹, 종단 행정에 대해 기대조차 없는 다수의 불심(佛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1994년 개혁종단 출범 이후 최악의 수준이라는 우리 불교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켜야 할 또 다른 사회적 책임이 있다.

종단정치라는 말이 있을 만큼 선거 뒤 논공행상은 조계종의 관행이었다. 하지만 이제 신임 총무원장은 자신에게 표를 몰아줬던 중앙종회(조계종의 국회)나 특정 세력이 아니라 종단 대중이 원하는 새로운 개혁의 수장이 되어야 한다.

청정승가(淸淨僧伽) 회복은 가장 시급한 과제다. 설정 전 총무원장에 대한 탄핵의 비등점을 넘어선 것은 계율 파괴를 둘러싼 논란이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본사 주지를 비롯한 중견 승려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는 게 청정승단을 표방하는 조계종의 현주소다. 총무원은 물론이고 중앙종회와 본사 주지 등 종단 행정의 중심축이 기득권 세력화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개혁 조치도 요구된다.

생명력이 다한 선거제도를 포함한 종단 제도의 민주화도 시대적 과제다. 현재의 간선제는 종회 내 다수파가 종단 구성원 다수의 뜻에 관계없이 종권을 재생산할 수 있어 불공정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개혁이 좌초될 경우 조계종은 또다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번쩍, 마하보디 사원에 어둠이 깔리면서 보리수 주변에 등이 환하게 켜졌다.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 출가자라면 숱하게 들었을 초심(初心)의 소리다. 무소의 뿔처럼 꿋꿋하게 걸어가는 총무원장을 기대한다.

부다가야(인도)=김갑식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