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 이런 도시를 건설한 힘은 시리아의 지정학적 위치가 주는 부유함 때문이었다. 시리아는 고대 오리엔트제국부터 인도와 유럽, 북아프리카의 산물이 교차하는 무역의 십자로였다. 팔미라왕국은 로마제국에서도 으뜸가는 부국이라 로마의 속주 시절 번영을 누렸고 로마의 통치에서 벗어나 독립하려는 꿈도 가졌다. 제노비아의 독립전쟁은 강렬했다. 이집트까지 영토를 넓혔고 로마 군단을 몇 번이나 격퇴했다. 로마 황제 아우렐리아누스는 게르마니아에 주둔하는 로마 최강 군단을 시리아로 데려와야 했다. 그 뒤로도 전쟁은 쉽지 않아 황제 자신이 부상을 당할 정도로 고전하다가 간신히 승리했다. 제노비아는 황제의 포로가 됐다.
제노비아의 영광과 비극은 시리아가 4000년간 받은 고통의 축약판이다. 아시리아와 페르시아, 로마, 십자군, 오스만까지 유럽과 근동에서 발기한 제국은 너나없이 시리아를 탐내고 정복했다. 이제 낙타 무역의 시대가 끝났음에도 시리아에서는 전쟁이 그치지 않는다. 지금도 이 땅은 미국과 러시아, 오스만의 후예인 터키와 중동의 석유왕국들이 충돌하는 지점이 됐다. 재작년 터키 이스탄불에서 거리에 앉아 있는 시리아 난민 부녀를 봤다. 소녀는 제노비아만큼이나 아름다웠는데 빵 조각 하나를 들고 있었고 길고양이들이 그 빵을 노리며 빙 둘러서 있었다. 시리아가 쓸모없는 땅이었다면 이런 고통도 없었을 것이다. 축복은 그것을 지킬 능력이 있는 나라에만 축복이 된다.
임용한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