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나라는 요동성을 뚫지 못했지만 645년 당군은 요동성과 백암성을 차례로 함락하고 고구려 방어선 중앙에 돌파구를 열었다.
그 뒤에 안시성이 있었다. 안시성은 3개월간 당군의 포위를 버텨내 침공을 좌절시켰다. 안시성이 함락된다고 해서 고구려가 망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후 지속된 고구려와 당의 전쟁사를 봐도 안시성 다음으로 압록강과 청천강, 대동강의 방어선이 있다. 평양성도 최후의 보루로 포위전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요동성과 백암성이 함락되고 수십 개의 성이 방어를 포기하고 도주했지만 안시성은 자신의 위치를 지켰다. 이 전투로 당의 침공은 좌절됐고 한 개의 성이 당의 대군을 막아낼 수 있음을 증명했다.
자신의 위치에서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것. 이것은 전쟁사가 줄 수 있는 가장 감동적인 실례의 하나다. 지금 우리 사회는 능력도 없는 자들이 권리만 누리려고 하고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풍조가 만연하다. 안시성의 교훈이 먼 나라 일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하긴 꽤 오래전 일이기는 하다.
임용한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