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종 정책사회부 차장
6월 보건복지부 고위관계자가 한 말이다. 두 달 뒤 발표될 4차 국민연금 재정추계에서 연금 고갈 시기가 앞당겨질 것이 자명한 만큼 국민이 반대해도 보험료 인상, 소득대체율 조정을 꼭 이뤄내야 한다는 얘기였다.
석 달이 지난 이달 18일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을 만나 “국민이 선택할 수 있는 안을 넓게 제안하고 국회에서 다수가 지지하는 안을 채택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현재의 국민연금은 낸 돈보다 더 많이 받는다. 당연히 ‘지속불가능’하다. 결국 지금보다 더 내거나 덜 받는 게 유일한 해법이다. 하지만 박 장관이 복수안을 만들어 국민의 의사를 묻겠다고 밝히는 순간, 유일한 해법과는 멀어질 공산이 커졌다.
젊은 세대는 “늙으면 연금을 못 받는 것 아니냐”며 제도 자체를 불신한다. 중년이나 고령층은 연금을 더 늦게 받거나 적게 받는 개편에 반대한다. 기성세대와 미래세대 모두가 고통을 분담해야 연금 개혁이 가능한 상황에서 ‘국민 다수가 동의하는’ 안을 과연 만들 수 있을까? 이는 결국 세대 간 ‘세 싸움’을 붙이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여기엔 문재인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이 한몫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국민연금의 주인은 국민이므로 제도 개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 합의”라며 국민 동의 없는 개편은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앞선 사례를 보면 국민이 동의하는 국민연금 개혁이 가능한지 의문이다. 2003년 1차 재정추계 당시 15.9%로 보험료를 올리는 개편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폐기됐다. 2013년 3차 재정추계 때도 보험료를 14% 올리는 안이 여론 악화로 백지화됐다.
연금개혁은 정권에 큰 부담이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은 2007년 취임 후 국민연금을 개편했다가 지지율 하락으로 다음 대선에서 패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 역시 연금 개편을 추진한 결과 2005년 총선에서 졌다. 그럼에도 연금개혁은 이들의 가장 큰 치적이다.
한국은 출산율 0명대인 ‘저출산’과 인구의 5분의 1이 노인인 ‘고령화’를 동시에 겪고 있다. 연금을 낼 사람은 줄어드는데 받을 사람은 급증하는 상황에서 ‘국민 뜻에 따르겠다’는 정부 선언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지금 필요한 건 모두가 균등하게 고통을 나누는 단일안을 만들어 국민을 설득하는 일이다. 부디 20년 뒤 박 장관을 비롯한 국민연금 책임자들이 청문회장에 서지 않기를 바란다.
김윤종 정책사회부 차장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