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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나이 들면 땅만 보고 걸어야 하는 나라

입력 | 2018-09-04 00:00:00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으나 노인들의 안전을 위한 인프라 구축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동아일보 취재진이 노인이 많이 모이는 서울 종로3가 일대 인도를 ‘노인 체험 장비’를 착용한 채 걸어 보니 곳곳이 ‘지뢰밭’이었다. 인도 중간에 불쑥 솟은 소화전, 상점 입간판 등 장애물이 많고 맨홀은 미끄러지기 쉬웠다. 인도와 이면도로 사이의 높은 턱과 급경사는 발을 헛디디기 십상이었다. 횡단보도는 채 반도 건너지 못했는데 신호등이 깜빡거렸다. 지팡이나 보행보조기에 의존해 도심 횡단보도를 건너는 건 진땀 빼는 ‘전투’였다.

우리 사회는 지난해 65세 이상 인구가 711만5000명으로 전체의 14.2%를 차지해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2025년에는 노인 인구가 20%를 넘는 초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그동안의 노인정책은 대부분 ‘빈곤 노인’을 대상으로 한 복지 정책에 그쳤고 안전 인프라에는 거의 신경을 못 써 왔다.

해마다 낙상 등으로 골절사고를 겪는 노인이 10명 중 1명에 달하며 연간 의료비는 1조 원에 육박한다. 지난해 보행 중 사망자 1675명 가운데 65세 이상이 906명으로 54%였다. 국가 차원에서 고령 친화 인프라 대책이 없었던 데다 노인 사고에 대해 ‘쓸데없이 돌아다니다…’라며 개개인의 부주의로 치부하는 편견이 깔려 있었다.

노인 부상은 개인의 부주의가 아니라 사회의 ‘소홀’이다. 고령화를 먼저 경험한 선진국은 인도와 이면도로·횡단보도 턱 없애기, 휠체어 등을 위한 보행 안전 유효 폭 확대, 이면도로 바닥 재질과 색 바꾸기, 노인 친화형 화장실과 샤워실 개조 등을 실행하고 있다. 우리도 도로나 공공기관, 대중교통, 운전 등 일상 전반에 걸쳐 노인들이 안심하고 돌아다닐 수 있도록 ‘노인 인프라’에 투자를 해야 할 때가 됐다. 노인의 안전이 고령사회 대한민국의 삶의 질을 좌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