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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정원수]산 권력이 살해한 대법원… 사법부 신뢰도 함께 죽었다

입력 | 2018-08-17 03:00:00


정원수 사회부 차장

“자네 판결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 버번 위스키는 정말 끝내주는군.”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초여름. 해리 트루먼 당시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가까운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만찬 도중 집주인에게 한 말이다. 바비큐와 카나페를 안주로 곁들이면서 버번을 들이켜 취기가 오른 직후였다.

그해 4월 8일 트루먼 대통령은 철강 생산 공장을 몰수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전시(戰時)엔 국방부가 철강을 대량 구매해야 하는데, 철강업계에 파업이 일어나면서 철강 생산에 영향을 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앞서 트루먼 대통령은 20년 넘게 흉금을 터놓는 ‘포커 게임 친구’였던 프레드 빈슨 연방대법원장에게 자문해 “다수가 행정명령을 지지할 것”이라는 응답까지 받았다.

그러나 두 달 뒤 연방대법원은 대통령의 기대와는 달리 국가 긴급 상황임에도 6 대 3으로 위헌 판결을 내렸다. 대통령에게는 사기업을 몰수할 헌법적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곤혹스러웠던 빈슨 연방대법원장은 판결 직후 다수의견을 집필한 주심 휴고 블랙 연방대법관의 집으로 대통령을 초대했다. 트루먼 대통령이 가장 싫어했던 이 판결은, 역설적으로 미국 사법부와 행정부의 긴장 관계를 상징하는 두 가지 대표 사례로 요즘도 자주 인용된다. 트루먼 대통령이 지명한 두 명의 대법관이 대통령 반대편에 섰고, 대통령의 오랜 친구가 이끄는 연방대법원도 백악관 맘대로 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때였다. 도널드 럼즈펠드 당시 국방장관은 9·11테러 후속 조치로 오사마 빈라덴의 운전기사 살림 함단을 쿠바의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했다. 정식 재판이 아닌 군사위원회에서 기소했고, ‘전쟁포로에 관한 제네바 조약’도 따르지 않았다. 그러나 2006년 6월 연방대법원은 5 대 3으로 불법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주심이자 스윙보터였던 클래런스 토머스 연방대법관은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 때 임명장을 받은 보수 성향이었다.

이 일화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법률 평론가 중 한 명인 현직 교수가 쓴 책에 그대로 나온다. 이 내용이 떠오른 건 검찰이 수사 중인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에 대한 재판 거래 의혹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김기춘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은 2013년 12월 공관으로 법원행정처장을 불러 외교부 장관의 민원을 듣게 했다. 한일 관계 악화를 우려해 대법원에 개별 사건의 재판 연기와 판결 뒤집기를 노골적으로 요구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공교롭게도 그때 이후 대법원은 기존 대법원의 결정에 맞게 하급심에서 올라온 사건 결정을 5년째 미루고 있다가 뒤늦게 심리에 나섰다.

더 우려스러운 건 2012년 5월 일본 전범기업이 피해자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취지로 이 사건을 처리한 대법관 4명을 외교 변수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법관으로 낙인찍었다는 점이다. 당시 주심인 김능환 전 대법관에게 연락하자 늦은 시간에 “판사는 판결로만 말한다. 달리 드릴 말씀이 없다”는 답변이 왔다. 다만 당시 파장이 컸던 판결 뒷얘기를 취재한 동아일보 기사 곳곳에 그의 고민이 묻어나 있다.

‘한일 정부에 예민한 사안이어서 신중론도 제기됐지만 대법원은 17년간 소송에 매달린 피해자의 최종적인 분쟁 해결 필요… 2009년 3월부터 3년여간 최소 2m 높이의 자료 수집과 법리 검토…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 기업들이 피해를 배상한 논문도 검토….’

살아 있는 권력의 부탁으로 동료 대법관의 노력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최고법원을 누가 신뢰할 수 있을까. 최고법원을, 그리고 나라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었던 그 선택이 두고두고 입길에 오를 것 같다.
 
정원수 사회부 차장 need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