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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이건혁]시대착오적인 ‘은행 지점 폐쇄 가이드라인’

입력 | 2018-08-03 03:00:00


이건혁 경제부 기자

“은행 지점은 서점이나 음반 판매점과 같은 운명을 맞을 것이다.”

금융 분야 미래학자인 브렛 킹은 2013년 내놓은 저서 ‘뱅크 3.0’에서 은행 영업점의 미래를 이렇게 그렸다. 모바일뱅킹 등 핀테크(금융과 기술의 융합)의 발전으로 오프라인 점포를 통해 처리하던 은행 업무 상당수가 온라인으로 넘어갈 것이란 전망이었다.

실제 금융 현장의 무게중심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3월 말 현재 국내 은행의 점포 수는 6963개. 2012년 말 7835개에 비해 약 5년 만에 1000여 곳이 사라졌다.

올 1분기(1∼3월) 은행 고객들이 직접 영업점을 찾아 입출금을 하거나 이체를 한 거래 비중은 9.5%에 불과하다. 나머지 90.5%가 인터넷뱅킹,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등 비대면(非對面) 채널로 이뤄졌다. 특히 인터넷뱅킹 이용자의 대다수(92.4%)는 ‘손안의 금융’인 스마트폰을 이용해 은행 업무를 봤다. 스마트폰뱅킹의 하루 평균 거래금액은 5조3946억 원으로 1년 새 47% 증가했다.

지난해엔 아예 점포가 없는 인터넷전문은행 두 곳이 설립돼 빠르게 은행 고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최근 출범 1주년을 맞은 카카오뱅크는 국내 경제활동 인구 10명 중 2명이 이용할 정도로 성장했다. 이에 맞서 시중은행들도 모바일 서비스를 업그레이드하는 등 핀테크 혁신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금융감독원은 최근 ‘은행 지점 폐쇄 절차에 대한 모범규준’을 마련하겠다고 나섰다. 모범규준에는 은행이 영업점을 폐쇄하기 전에 고객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고 이를 사전에 알리도록 하는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고객 불편 사항이 드러나면 이를 줄이는 방안을 별도로 마련하고, 고객이 폐쇄된 지점을 대신해 이용할 다른 금융회사 지점을 찾아주는 방침도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은 “은행 영업점이 줄어들면 모바일뱅킹에 서툰 고령층이나 상대적으로 지점이 적은 지방 고객들이 불편을 겪을 수 있다”는 이유로 이런 가이드라인을 만든다고 했다. 하지만 은행들 사이에서는 금융당국이 점포 폐쇄까지 간섭해 경영 자율성이 훼손된다는 볼멘소리가 크다. 당국이 모범규준을 근거로 지점 감축을 막을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물론 오프라인 지점이 필요한 계층도 있다. 핀테크가 발달할수록 고령층은 이로 인한 혜택에서 소외되고 세대별 금융 활용 격차가 커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고령층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핀테크 환경을 만들어 해결할 일이다. 은행 영업점이 많다고 노인들이 지금보다 편리하게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복잡한 인증 절차 등 핀테크 접근을 어렵게 만드는 각종 규제 장벽을 없애고 고령자 친화적인 핀테크 신기술이 도입되면 고령층도 힘들게 오프라인 영업점을 찾을 이유가 없어진다.

지점 폐쇄 절차까지 가이드라인을 만들려는 것은 낡은 방식의 규제다. 세계적인 추세인 핀테크 흐름에서 국내 금융사들이 뒤처지지 않도록 독려하는 것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금융당국이 해야 할 일이다.
 
이건혁 경제부 기자 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