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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美 테이블서 사라진 ‘비핵화 시간표’

입력 | 2018-07-19 03:00:00

“시간 제한도 속도 제한도 없다”
트럼프, 일괄타결 철회 잇단 시사… 비핵화 본질보다 ‘이벤트’ 치우쳐
정부 “北-美 판 깰 생각은 없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7일(현지 시간) 북한의 비핵화 논의와 관련해 “시간 제한도, 속도 제한도 없다(no time limit, no speed limit)”며 서두르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최근 잇따라 비핵화 장기전을 시사한 트럼프 대통령이 한발 더 나아가 처음으로 ‘북핵 폐기 시간표’가 없다는 점을 밝힌 것이다. 이는 기존의 단기적 일괄 타결 방침을 사실상 철회하는 것이어서 북핵 협상이 예상보다 더 장기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협상 테이블에서 사라진 ‘비핵화 시간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공화당 하원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급하게 속도 내지 않는다(no rush for speed)”며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 시간 제한이 없다고 밝혔다. “북한과의 물밑 논의가 잘 진행되고 있다”고 강조하긴 했지만 단기간에 합의점을 찾기 어렵다는 점을 결과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같은 날 CBS와의 인터뷰에서도 유해 송환 실무회담을 비롯한 북한과의 협상에 대해 “서두르지 않겠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정상회담 전까지만 해도 “북핵 문제는 일괄 타결이 될 것”이라며 속전속결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혔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2020년 말) 내 비핵화’를 제시한 데 이어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1년 내 핵프로그램 폐기’를 언급하면서 기대감을 높였다.

그러나 비핵화 시간표 설정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구체적인 비핵화 이행 계획을 끌어내지 못하면서 점차 흐지부지됐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협상에서도 비핵화의 절차와 방식, 대상, 보상 및 순서를 조율하는 문제를 놓고 진전을 보지 못하면서 일괄 타결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확산된 결과다.

○ 서로 물고 물린 북-미의 셈법

북한 비핵화 논의가 본격적인 장기화 수순에 접어들어 향후 북-미 협상은 북한의 전형적인 ‘살라미 전술’에 끌려가게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이 ‘단계적 동시행동’ 원칙에 따라 단계별로 보상을 끌어올리려는 전략을 취하면서 가시적인 성과 없이 줄다리기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다만 북한과 미국 모두 협상의 판을 깰 생각은 없다는 것이 당국자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양측이 서로 머리와 꼬리를 물고 물린 형국”이라며 “서로에게 잡혀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속도가 더디더라도 워킹그룹 등을 중심으로 논의는 계속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분간 북-미 논의는 핵 사찰 리스트의 제출과 검증, 국제기구 사찰 등 본격적인 비핵화 협상보다는 미사일 엔진실험장 폐기 같은 이벤트성 조치를 중심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조태용 전 외교부 차관은 18일 한반도미래포럼 주최로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11월 미국 중간선거까지 협상 국면이 유지되는 가운데 김정은이 이미 약속했던 ‘선물(엔진실험장 폐쇄 등)’을 줄 가능성이 있다”며 “중간선거 결과에 따라 북한이 2020년까지 버티려 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