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원유 해상수송량 30% 통로, “어떤 선박도 못 지나간다” 초강경 강행땐 유가급등 글로벌경제 휘청… 美 해군 “항해 자유 보장” 맞서 트럼프는 사우디 등에 증산 요구
로하니 이란 대통령
이스마일 쿠사리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이 4일 중동 주요 산유국들의 원유 수출길인 걸프 해역 봉쇄를 시사했다. 혁명수비대의 해외 작전을 담당하는 쿠드스군의 카셈 솔레이마니 사령관도 같은 날 “그런 시의적절하고 현명한 말을 한 데 대해 대통령에게 경의를 표한다”며 “그의 지시에 따라 이란을 섬기기 위해 어떤 정책도 이행할 채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세계 각국은 11월 4일까지 이란산 석유 수입을 중단하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압박에 이란이 ‘호르무즈해협 봉쇄 불사’라는 강경 대응 방침을 밝히면서 미국과 이란의 석유전쟁으로 번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이라크 바레인 등 중동의 주요 산유국이 원유를 수출하는 통로인 호르무즈해협은 전 세계 원유 해상 수송량의 30%를 차지하는 요충지다. 이 지역이 봉쇄된다면 유가 공급에 치명타를 입어 유가 상승은 불가피하다.
이란은 위기 때마다 호르무즈해협 봉쇄를 거론해 왔다. 이란 핵 위기가 고조된 2012년 7월 미국의 원유 수입 중단 조처가 본격화되자 이란군은 호르무즈해협 주변에서 군사훈련을 활발하게 펼치는 것으로 맞대응했다. 호르무즈해협이 실제로 봉쇄된 적은 한 번도 없는데도 그때마다 국제유가는 들썩였다. 그만큼 글로벌 경제에 미칠 타격이 크기 때문이다.
이란 혁명수비대의 해협 봉쇄 경고에 대해 미군 중부사령부 대변인인 빌 어번 대위는 4일 “미 해군과 지역 동맹국들은 국제법이 허락하는 곳에서 항해와 무역의 자유를 보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반박했다.
로하니 대통령이 유럽을 찾은 것은 미국의 제재 부활에 맞서 이란 원유 최대 고객인 유럽과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미국은 11월 4일로 정한 석유 수입 중단 시한 외에도 8월 6일까지만 기업들의 이란 교역에 따른 제재를 유예하며 그 이후부터는 제재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로하니 대통령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아마노 유키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을 만나 미국의 이란산 원유 금수 조치에 맞서 IAEA와의 협력을 축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다른 이란 핵협정(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서명국들이 이란의 이익을 보장한다면 미국 없이도 핵협정에 잔류하겠다”고 제안했다. 유럽이나 중국 러시아가 이란 투자와 경제 협력을 계속하지 않으면 핵 활동을 재개하겠다고 경고한 셈이다.
대이란 제재의 부작용인 유가 상승을 최대한 막으려는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와 UAE 등 동맹 산유국에 원유 증산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과 주요 산유국들이 이달부터 하루 110만 배럴을 증산하기로 했지만 유가 상승세가 꺾이지 않자 압박을 더욱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