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횡설수설/고미석]무너져가는 계층사다리

입력 | 2018-07-03 03:00:00


미국 프린스턴대 동문은 ‘끼리끼리 결혼’을 선호하는 것으로 소문나 있다. 그런데 같은 졸업생이라도 결혼 시기는 부모 재력에 따라 달라진다. 1980년대 초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졸업생 중 절반 이상이 2014년까지 결혼을 했지만 저소득층 출신 동문의 결혼 비율은 이보다 낮았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가 소개한 ‘기회평등 프로젝트’의 추적조사 결과다.

▷다른 아이비리그 대학들도 마찬가지다. 1980∼1984년 태어난 소득상위 가구 학생의 결혼율은 저소득층에 비해 14%포인트나 높았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공립대에서도 계층에 따른 격차는 뚜렷했다. 인디애나대의 한 기숙사 여학생들을 5년 후 조사해 보니 ‘부자 아빠’를 둔 여학생들은 학비 융자 걱정 없이 실컷 파티를 즐기고도 대부분 제때 졸업하고 취업도 했다. 저소득층 출신 여학생들은 한 명도 졸업장을 받지 못했다.

▷불평등은 우리 시대의 세계적 화두다. 한국의 경우 소득분포 하위 10%가 중간 계층으로 진입하는 데 5세대가 걸린다고 조사됐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보고서 ‘고장 난 엘리베이터? 어떻게 사회 이동을 촉진할 것인가’에 따르면 OECD 평균은 4.5세대. 한국과 같이 5세대가 소요되는 나라로 미국 영국 이탈리아 스위스 등이 꼽혔다. 우리나라는 부모보다 자식 세대의 ‘가방끈’이 길었지만 직업 이동성은 낮았다. 육체노동자의 자녀 중 40%가 다시 블루칼라가 됐다.

▷소득과 더불어 기회의 불평등, 상대적 빈곤감도 문제다. 사다리를 오르는 길이 좁아진 것, 나보다 여유 있는 사람을 보며 느끼는 박탈감이 남긴 상처가 청년층의 마음을 좀먹고 있다. 지난해 닐슨코리아 조사에서는 계층 역전 가능성에 대해 20대의 인식이 가장 부정적이었다. 이들에게 현금을 쥐여 주는 대신 튼튼한 사다리를 복원하는 것이 진정한 복지일 터다. 심리학자 키스 페인은 저서 ‘부러진 사다리’에서 불평등이 빈곤층만의 문제가 아님을 강조했다.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에게 심리적 파장을 미치기 때문이다. 사다리가 무너지면 사회도 함께 무너진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