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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깨친 할머니 시인들… 100편의 詩,100번의 울림

입력 | 2018-05-25 03:00:00

김용택 시인 ‘엄마의 꽃시’ 엮어
“모진 시간, 눈물보다 희망 노래… 읽는 순간 가슴 툭 터지며 먹먹”




전북 임실군 진메마을 고향 옛집에 선 김용택 시인. 이 집은 ‘글이 돌아온다’란 뜻의 ‘회문재(回文齋)’ 현판이 붙은 문학관이 됐다. 그는 “문학은 삶의 다양한 감정을 불어넣어 인간다움을 지켜준다”고 말했다. 마음서재 제공

꾸밈이 없다. 현학적인 말은 더더욱 없다. 그런데도 가슴 한구석이 오래도록 찡하다. 생애 처음 한글을 깨친 할머니들이 쓴 시 100편을 김용택 시인(70)이 엮고 한 편 한 편마다 정겹고 솔직한 감상을 담은 ‘엄마의 꽃시’(마음서재·1만3500원)는 그렇다.

전북 임실군 진메마을 고향집에 사는 김 시인은 최근 전화 인터뷰에서 “이들 시를 보니 가슴이 툭 터지며 가락이 흘러 들어와 한달음에 감상글 100편을 썼다”고 말했다. 그는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아내에게 한글을 배워 자신의 시를 더듬더듬 읽어내던 모습과 할머니들이 겹쳐졌다고 했다.

“호미 들고 홀로 밭에 가며 학교 가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던, 그 어려운 시절을 살아내신 분들이잖아요. 이들 시는 우리 어머니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100편의 시에는 100개의 인생이 담겼다.


‘사십 년 전 내 아들/군대에서 보낸 편지/언젠가는 읽고 싶어/싸움하듯 글 배웠다/…떨리는 가슴으로/이제야 펼쳐본다//콧물 눈물/비 오듯 쏟아내며/사십 년 전으로 돌아간다.’(조남순 ‘사십 년 전 편지’)

‘…사진 속 당신은 늘 청년인데/나는 어느새 당신을 영감이라고 부릅니다//…열심히 공부해서/정갈한 편지 한 장 써 보내겠습니다.’(이경례 ‘영감님께 보내고 싶은 편지’)

모진 시간을 견뎌왔지만 서러운 눈물보다 한글을 알게 됐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희망을 노래하는 모습에 그는 고개가 숙여졌다고 했다. 감상글에서 ‘배정동 시인님, 김금준 시인님, 김용녀 시인님, 박옥남 시인님’이라며 할머니들을 시인으로 호명했다.

“살면서 일어난 일을 진솔하게 쓰면 시가 됩니다. 어머니가 ‘꾀꼬리 울음소리 듣고 참깨가 나고 보리타작하는 도리깨 소리 듣고 토란이 난다’고 말씀하시는데, 이게 시예요. 할머니들의 시가 바로 그렇고요. 그분들이야말로 진짜 시인이시죠.”


올해 70세가 되자 그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조금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하지만 자연 속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이 좋아 나이에 얽매이지는 않게 된다고 했다. 매일 아침 1시간 반 정도 강변으로 나가 산책하는 것도 삶의 기쁨 중 하나다.

“자연이 변화무쌍해서 하루하루 얼마나 재미있는지 몰라요. 요즘 찔레꽃이 많이 피어서 한참을 들여다봐요. 새벽에는 소쩍새와 뻐꾸기가 울더라고요.”

아내가 캐 온 쑥을 같이 다듬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쓸데없는 간섭’도 한단다. 이웃들을 대상으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작은 음악회도 연다. 사진과 산문을 모아 책을 내고 내년에 시집도 출간할 예정이다.

“글 쓰고 싶은 분들에게 꼭 시골로 오라고 권하고 싶어요. 자연만 자세히 들여다봐도 쓸 게 무궁무진하거든요. 하하.”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