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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신언항]출생등록제 시행으로 아동권리 보호를

입력 | 2018-05-24 03:00:00


신언항 인구보건복지협회장·전 보건복지부 차관

얼마 전 경북 구미시의 한 원룸에서 20대 아빠와 16개월 된 아들이 숨진 채 발견됐다. 아빠는 병을 앓다 숨지고, 아들은 굶어 숨졌을 것으로 경찰은 추측하고 있다. 더 안타까운 점은 아들의 출생신고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태어난 흔적도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난 아기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언론은 이 사건을 보도하며 우리나라의 부실한 복지제도를 지적했다. 대상과 범위를 확대했지만 여전히 안전망에 걸리지 않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동인권에 대한 언급이 부족한 것이 아쉽다. 긴급복지지원법 대상으로 보호받으려면 우선 신분이 확인돼야 하는데, 아이는 서류상 존재하지 않는 투명인간이기에 국가로부터 어떤 보호도 받을 수 없다. 병으로 함께 죽은 아빠의 사정이 딱하긴 하지만 부모로서 자녀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보호하지 못했다.

현행법상 아이의 출생신고는 부모가 해야 한다. 출생신고를 해야 하지만 늦게 하거나, 하지 않더라도 1만 원에서 5만 원 정도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수준이다.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아동은 제도권에서 건강하게 성장할 권리를 잃게 된다. 병원에서 예방접종 서비스도 받을 수 없고 학교 교육을 받을 수도 없다. 아동학대와 불법매매에 노출될 위험도 크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모든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될 권리를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2011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 정부는 모든 아동의 보편적 출생등록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7년이 지났지만 관련 제도를 마련하지 못했다. 영국, 캐나다, 독일 등 선진국은 자국에서 태어난 모든 아동의 보편적 출생신고를 법에 명시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의사나 조산사 등이 국가기관에 아동 출생 사실을 통보할 의무를 부여하라”고 법무부와 대법원에 권고했지만 아직 시행되지 않고 있다.

출생신고는 모든 아동이 법적으로 신분을 갖고,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이익을 보장받을 수 있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절차이다. 아동 스스로 권리를 찾고 자립할 수 있도록 어른들이 보호해야 한다. 어른들의 사정 때문에 아동의 인권이 침해받으면 안 된다. 모든 아동은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받고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

5월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기념일이 많은 ‘가정의 달’이다. 우리 아이가 누릴 행복과 기쁨을 생각하며 세상에 존재하지만 신분이 없어 보호받지 못하는 아동에게도 관심을 나눠 보면 어떨까? 아동의 이익이 최우선으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사회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신언항 인구보건복지협회장·전 보건복지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