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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경협, 시련은 있어도 포기는 없다”

입력 | 2018-05-16 03:00:00

김정일 3차례 만나고 30여차례 방북… ‘대북사업 아이콘’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2014년 11월 18일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원동연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왼쪽) 등과 금강산에서 금강산 관광 16돌 기념식수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현대그룹 제공

“선대 회장님의 유지(遺志)인 남북 경제협력(경협)과 공동 번영은 반드시 현대그룹에 의해 꽃피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사명감은 남북 교류의 문이 열릴 때까지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2018년 새해 현대그룹 시무식이 열리던 날. 현정은 회장은 직원들에게 어김없이 남북 경협 이야기를 꺼냈다. 현 회장은 매년 신년사에 남북 경협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2017년에도 “대북사업 재개에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 끝끝내 기다릴 것이며 대북사업 재개에 만반의 준비를 다하자”고 했다. 남북 협력의 가교 역할을 해왔다는 자부심을 바탕으로 남북 경협 시대를 기다린 것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다시 남북 경협에 봄바람이 불고 있다. 현 회장과 현대그룹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현 회장이 남편과 시아버지가 못다 이룬 남북 경협의 꿈을 완수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현 회장은 2003년 남편 고 정몽헌 회장을 이어 취임했다. 전문 경영인 출신이 아니라는 꼬리표를 떼기 위해서라도 사업 성과를 내야 했다. 취임 초기 성적표는 좋지 않았다. 2003년 이후 금강산 관광은 적자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현 회장 취임 2년 뒤인 2005년, 금강산 관광이 52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했다. 시아버지인 정주영 명예회장이 1998년 소 떼를 이끌고 북한을 방문한 지 7년 만에 흑자가 난 것이다.

현 회장은 취임 이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세 차례나 만났고 30차례 이상 북한을 방문하며 사업을 챙겼다. 2005년 8월 현 회장은 고 정몽헌 회장 2주기 행사에서 “몽헌 회장이 하늘나라에서 도와주고 있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당시를 기억하는 한 현대그룹 관계자는 “남편을 떠나 보내고 그룹을 혼자 이끌며 참아온 인고의 세월이 눈물로 터져 나온 것 같았다”고 말했다. 특히 현 회장은 금강산 관광 사업을 끝까지 이끌고 싶어 했다.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 앞에서 “금강산 관광 고객이 한 명이 있더라도 (사업을)해 나갈 생각”이라며 의지를 밝힌 일화는 유명하다.

그러나 2008년 금강산 관광객이 북한군에게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현 회장은 큰 위기를 겪는다. 금강산 관광은 중단됐고 개성공단도 폐쇄와 재가동을 반복했다. 현대아산은 금강산 관광 중단 이후 매년 수십억 원의 적자를 보기 시작했다. 중단 이후 누적 매출 손실만 약 1조5000억 원에 이른다. 관광 중단 직전 1084명에 달하던 임직원은 현재 약 150명 규모로 줄었다. 2007년 197억 원이던 영업이익도 지난해엔 67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현대아산 임직원들은 기업의 존폐를 걱정해야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오피스텔과 공공건물 건축 등 건설사업에도 뛰어들었다. 2016년에는 미국에서 탄산수를 수입해 팔 정도였다.

하지만 현대그룹은 끝내 남북 경협을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달 27일 남북 정상의 ‘판문점 선언’이 발표된 뒤 현 회장은 8일 ‘현대그룹 남북경협사업 TFT’의 출범을 발표했다. 현 회장이 TFT 위원장을 직접 맡기로 했다. 그룹 전체가 남북 경협 사업을 위해 뛰어들게 됐다. 한편으로 현 회장은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과 유엔 대북제재 완화 등 거쳐야 할 단계가 많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현 회장은 TFT 출범식에서 “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고 정몽헌 회장의 유지를 잘 받들되 남북 경협사업 선도 기업으로서 지난 20여 년간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신중하면서도 주도면밀하게 사업 재개 준비를 해달라”고 직원들에게 당부했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