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 합격, 계급’ 출간 장강명 작가
장강명 작가는 “갈수록 기업, 대학 간 서열이 더 세밀하고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며 “이 때문에 모든 시험이 고시화되고, 그로 인한 사회적 낭비가 커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그는 11년간 기자생활을 한 경험을 발휘해 문학상 심사 현장과 삼성그룹 필기시험장, 사법고시 존치 반대 집회장 등을 누비며 60명 이상을 심층 인터뷰했다. 그는 “유사신분제 사회인 한국을 떠받치는 기둥은 시험”이라고 잘라 말했다. 문학상 공모전 4관왕(한겨레문학상, 수림문학상, 제주4·3평화문학상, 문학동네작가상)에 언론사 시험, 대기업 공채까지 합격했던 그가 아닌가.
“한국에서 소설가가 되려면 왜 시험 같은 공모전을 통과해야 하는지 궁금해서 취재를 시작했어요. 부조리한 구조에서 제가 현재의 위치에 온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고요.”
그는 지금 한국사회의 시험제도는 온 나라의 젊음과 재능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인 과거제도를 연상시킨다고 했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나이는 평균 36.4세로, 10대 중반부터 공부했다고 치면 20여 년 걸린 셈입니다. 60, 70대까지 시험을 준비하는 장수생도 있었고요.”
19세기 후반에는 응시자가 20만 명을 넘었지만 최종 합격자는 한 해 30여 명이었다. 하지만 선발된 이들은 과학기술과 경제, 국제 정세에 취약했다. 그는 “중국의 과거제도를 받아들인 한국과 베트남이 근대화에 뒤처지고 과거제도가 뿌리 내리지 않은 일본이 승승장구한 역사가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과거제도를 둘러싼 풍경은 2011년부터 5년간 국가 공무원 시험 응시자 127만여 명에 합격자는 2만 명이 채 되지 않는 오늘날과 다르지 않다. 색종이를 접어 오린 뒤 펼치면 어떤 모양이 나올지 유추하는 대기업의 필기시험 문제, ‘쌈’이 바늘 몇 개인지 묻는 공무원 시험문제처럼 ‘선발’을 위한 시험이 공고하게 자리 잡았다고 진단했다. 사법고시생이 로스쿨생을 바퀴벌레에 빗대 ‘로퀴벌레’라 부르고, 로스쿨생은 사법고시생을 ‘사시충’이라 비하하는 것도 시험을 두고 벌어지는 살벌한 현실이다.
“시험이 유능한 사람을 못 뽑는다는 건 아니에요. 다만 합격자는 영원히 합격자로, 불합격자는 영원히 불합격자로 구분 지으며 신분 격차를 너무 크게 가른다는 게 문제라는 겁니다.”
그는 현재 범죄 관련 장편소설을 준비 중이다. 비인간적인 경제구조에 벼랑 끝으로 내몰린 사람들을 그리는 소설집 ‘산 자들’(가제)에 담을 단편도 쓰고 있다.
“소설만큼 제게 강렬한 짜릿함을 주는 건 없어요. 소설과 르포를 통해 인간과 세계에 대해 의미 있는 질문을 꾸준히 던지고 싶습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