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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첨단기술의 시대, 인문학이 밥 먹여준다

입력 | 2018-05-05 03:00:00

◇왜 인문학적 감각인가/조지 앤더슨 지음·김미선 옮김/284쪽·1만4500원·사이

스타트업 CEO 3분의 1이 인문학 전공, 부정확한 상황서도 유연한 사고 가능
빅데이터 시대, 인문학적 통찰력 유리




이 책은 변화하는 세상에서 인문학적 감각은 훨씬 중요해지고 있으며 사람들도 그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인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 엇인가’ 같은 인문학 강의가 수강생들로 미어터지는 것만 봐도 그렇다. 동아일보DB

‘문송합니다’라는 말이 있다. “문과라서 죄송하다”는 이 말은 우리 사회에서 인문학이 어떻게 취급받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전 세계적인 모양이다. ‘실패의 사회학’을 쓴 사회학자 메건 맥아들은 “영문학을 전공하고 싶다면, 우선 스타벅스 매장에 자리가 있는지부터 알아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비슷한 어록은 차고 넘친다. “철학자보다 용접공이 필요하다.”(미국 상원의원 마코 루비오), “심리학에, 철학이라…나중에 칙필레(샌드위치 체인점) 같은 데서 일하게 될 수 있단 점은 염두에 둬.”(젭 부시)

그런데 포브스 기자인 저자는 여기 모두가 간과하고 있는 ‘반전’이 있다고 주장한다. 인문학은 통념과 달리 돈이 되고, 고용을 창출하며, 기술 발전과 혁신의 중심이란 것이다. 일단 브루킹스연구소가 통계청 자료를 바탕으로 산출한 미국의 전공별 최상위 10% 고성과자들의 평생소득 자료를 보자. 가장 높은 소득을 낸 건 정치학, 역사학, 철학 전공자들이었다. 경력이 쌓였을 때 인문학 전공자들은 상원의원, 주지사, 방송프로그램 사회자, 베스트셀러 작가 등으로 사회적 영향력과 경제력 면에서 최고의 성층권에 도달할 확률이 더 높았다.

과학기술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 같지만 이것도 현실과는 다르다. 미국에서 컴퓨터 관련 분야의 고용은 총 노동인구의 3%에 불과하다. 2012년부터 5년간 컴퓨터 분야에서 만들어진 일자리는 54만 개였지만 나머지 분야에서의 총합계는 230만 개 이상이 생겼다. 증시, 금융의 주류는 인문학 출신, 특히 철학 전공자들이다.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스타트업 설립자의 3분의 1이 인문학을 전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인문학적 감각이 요구되는 분야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인문학을 통한 비판적 사고에 단련된 이들은 모순, 미지 상태에서조차 유연한 자세와 수평적 사고를 유지할 수 있다. 데이터는 많지만 정확성은 부족한 빅데이터 시대에 이런 능력은 더욱 강조된다. 3차원(3D) 프린팅, 유전학, 자율주행 자동차, 스마트 하우스 등 영역을 넘나드는 첨단기술의 각축장에서는 ‘비기술적 통찰력’을 요구하는 일자리가 훨씬 더 많다. IBM이 블록체인 팀에 사회학 전공자를 채용하고 맥킨지에 수많은 인류학 전공자가 근무하고 있는 이유다. 요컨대 우리는 인문학을 오해했다. 인문학은 지금까지 유망했으며 앞으로 더욱 그렇기 때문이다.

물론 인문학 전공자들이 화학공장에서 발효 분야 연구자를 대상으로 낸 채용에 적합한 인재가 아닐 수는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인생을 긴 안목에서 바라볼 때 교육은 인생 최고의 투자이고, 인문학은 그 정점에 있다고 말한다. 인문학의 중요성을 원론적으로 강조한 책은 많았지만 실제 산업현장에서 벌어지는 사례의 취재, 다양한 인터뷰, 통계를 통해 실제 ‘논증’해 보인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책이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