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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이명건]MB가 법치에 기여하려면

입력 | 2018-05-02 03:00:00


이명건 사회부장

1년여 만에 똑같은 주제로 칼럼을 쓰게 됐다. ‘전직 대통령 재판’. 당시 기소를 앞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은 최근 1심이 끝났다. 내일(3일)은 이명박 전 대통령 1심 첫 공판준비기일이다.

당시 칼럼은 박 전 대통령 측이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서 한 ‘말싸움’ 수준의 변론을 1심에서는 재연하지 않기를 당부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더 안 좋았다. 피고인석이 텅 빈 법정. 박 전 대통령은 재판 자체를 거부했다. 구속 연장을 이유로 선고까지 6개월가량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헌법에 기반을 둔 법치(法治)는 재판으로 완성된다. 그래서 재판 절차가 엉망이면 결론이 의심받고 법치가 흔들린다. (중략) 이 재판은 박 전 대통령이 법치에 기여할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당시 칼럼의 일부다. 그 의미는 이 전 대통령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는 구속된 뒤 기소될 때까지 검찰 수사를 거부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뒀다가 기소 직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표적수사를 진행해온 검찰 수사의 정당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법원 재판에 불신을 나타낸 적은 아직 없다. 같은 글에서 “여러 의혹들이 법정에서 그 진위가 명확히 밝혀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공판준비기일엔 불출석하지만 공판이 시작되면 법정에 선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 전 대통령도 박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1심 재판이 구속 기한(올 10월 8일 밤 12시)을 넘기고, 그 직전 검찰이 기존 영장과 다른 혐의로 영장을 추가 청구하는 경우에 말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법원의 영장 발부로 구속 기간이 연장되자 재판 거부에 돌입했다.

이 전 대통령의 혐의는 모두 16가지. 박 전 대통령 기존 영장 혐의가 18가지였던 점을 감안하면 이 전 대통령 1심도 구속 기한을 넘길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정치권과 검찰 주변에는 이 전 대통령의 ‘자원 외교’ 등에 대한 추가 수사가 벌어질 것이라는 설이 파다하다. 결국 1심이 진행되면서 추가 수사와 그에 따른 구속 기간 연장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다.

그 결과 만약 이 전 대통령까지 재판을 거부한다면 법치엔 타격이다. 헌정질서의 중추 대통령을 지낸 두 사람이 연이어 재판 절차를 무시한다면 경위야 어떻든 ‘법치 문란’이다.

이를 방지할 책무는 검찰에도 있다. ‘우리는 수사를 해 영장을 청구하고 기소한다. 피고인의 재판 거부는 알 바 아니다’라고 무시할 일은 아니다.

해법은 있다. 수사 결과에 대한 승복을 끌어내는 것이다. 억지로 굴복해야 하니까 수사 거부, 재판 보이콧을 하게 된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나와 주변의 뒤를 캤고, 의혹을 파헤쳤는데 누가 쉽게 승복하겠는가.

그래서 오래 전부터 당대의 검사들은 “꼭 ‘까치밥’을 남겨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수사를 봐주고 적당히 하라는 게 아니다. 확실하게 처벌하되 절제하라는 뜻이다. 의심이 든다고 죄다 뒤져서 쑥대밭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게 얻는 승복이 법치의 기반이라는 경험에서 나온 격언이다. 불구속 수사 원칙도 그 기반의 일부다.

이 전 대통령은 공판준비기일 이틀 전 변호인단을 6명에서 8명으로 늘렸다. 재판에 제대로 임하려는 의지로 읽힌다. 이 재판은 이 전 대통령이 법치에 기여할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이명건 사회부장 gun4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