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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렬한 자아’의 코미와 트럼프, 대서사시 버금가는 전투

입력 | 2018-04-18 03:00:00


“몇몇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부도덕할지는 몰라도, 보수적인 연방대법관을 임명하고 규제를 철폐하지 않느냐’라고 말한다. 터무니없는 소리다. 법치와 정직성은 정책을 둘러싼 그 어떤 다툼보다 더 중요하다.”

제임스 코미 전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15일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핵심 가치인 진실을 지킬 능력이 없는 그는 대통령으로서 부적합하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트럼프 백악관’을 지탱하고 있는 핵심 논리인 ‘결과지상주의’를 저격하면서 사실상의 ‘낙선 운동’에 들어간 것이다.

지난해 5월 트럼프 대선캠프와 러시아 정부 간 내통 의혹을 수사하다 전격 해임된 그는 11개월 만에 회고록 ‘더 높은 충성심(A Higher Loyalty)을 들고 돌아와 발간(17일)을 앞두고 카메라 앞에 섰다. 이날 인터뷰에서 코미 전 국장이 신간 부제에 포함된 단어인 ‘진실’을 언급한 횟수는 39회. 큰 제목에 들어간 단어인 ‘충성심’을 언급한 횟수(22회)보다 월등히 많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도덕성 부재를 겨냥한 코미 전 국장의 공세가 본격화되자 뉴욕타임스(NYT)는 “맹렬한 자아를 자랑하는 두 사람(트럼프와 코미)이 대서사시에 버금가는 규모의 전투를 벌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 ‘트럼프 비방에 굴복하지 않겠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 대 얻어맞으면 100배로 갚아준다”는 신조를 실천하겠다는 듯 트위터뿐 아니라 대변인실 그리고 공화당까지 동원해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그는 13일부터 나흘간 자신의 주요 여론창구인 트위터를 통해 코미 비판 글을 10건이나 올렸다. 공화당도 ‘거짓말하는 코미(lyincomey.com)’란 웹사이트를 개설하며 역으로 코미 전 국장의 도덕성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코미 전 국장은 과거에도 최고 권력의 압박에 맞선 전력이 있다는 점을 과시하며 대통령의 비방에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법무부 부장관으로 일할 당시 국가안보국(NSA)의 대테러 감시 작업의 합법성을 인정해 이를 승인하라는 백악관의 압박을 받았으나 이에 굴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코미 전 국장은 15일 인터뷰에서 당시 받았던 압박의 강도에 대해 “물렁한 포도처럼 으깨질 것만 같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그럼에도 “위법임은 분명했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당당하게 밝혔다.

코미 전 국장은 자신이 가족보다 국익을 앞세워온 사람임도 강조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아내가 이라크전을 둘러싼 ‘고문 논란’을 두고 “고문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말을 건넸고, 이에 “(기밀이 포함된 공무와 관련된) 얘기를 하면 안 되는 거 알지 않느냐”며 펄쩍 뛰었다는 것이다. 코미 전 국장은 같은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사는 가족, 가족, 가족, 가족이다”라고 말하며 국익과 사익을 구분하지 못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도덕성을 거듭 문제 삼았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 대통령의 분노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17일 오후)을 갖기 위해 플로리다 마러라고 리조트에 머무는 동안 증폭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대통령이 마러라고에 머무는 동안 덜 정제된 모습을 보이곤 했다”는 설명이다.

○ “놀랍게도 여론은 변하지 않고 있다”

코미 전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부도덕한 리더십’이라고 맹비난하면서도 “(탄핵은) 시민이 책임을 회피하는 방법”이라며 대통령 탄핵에 반대했다. 그 대신 그는 “시민들이 직접 미국의 가치에 대해 투표해야 한다”며 차기 대선(2020년)에서 대통령을 심판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2020년 대선 전에 승부의 윤곽이 나올 가능성도 높다. ‘러시아 스캔들’을 수사 중인 로버트 뮬러 특검이 트럼프 대통령의 사법 방해 혐의를 문제 삼는다면 대통령을 곤경에 빠뜨릴 증인 ‘1호’는 단연 코미 전 국장이다. 러시아 스캔들 수사를 지휘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의 부당한 수사 중단 요구를 직접 받았기 때문이다. 코미 전 국장은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마이클 플린 전 국가안보보좌관의 러시아 유착 의혹에 대해 FBI가 수사를 중단해 줄 것을 요청한 게 사법 방해에 해당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아마도 그렇다”고 말했다. 5월까지 미국 전역에서 진행될 회고록 ‘북 투어’는 11월 중간선거의 변수로 꼽힌다.

지난주 실시된 ABC방송-워싱턴포스트(WP) 여론조사에 따르면 ‘코미 전 국장이 트럼프 대통령보다 더 믿을 만하다’는 응답은 전체의 48%로 트럼프 대통령을 더 신뢰한다는 비율인 32%를 앞섰다. 하지만 이미 트럼프 찬반세력이 극명하게 갈린 상황에서 코미의 발언이 정세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라는 분석도 나온다. 래리 새버토 버지니아대 정치연구소장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미국 유권자들은 자신들의 ‘참호’에 몸을 숨기고 움직이지 않고 있다”며 “놀랍게도 (여론은) 거의 변하지 않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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