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예전에 취재 중 만난 한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의 얘기다. 그는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었다. 평생을 교육계에서 보낸 선생님이 그렇게 말하니 우울했다.
“그럼 어떻게 해요. 저희 애들은 어려서 앞으로 갈 길이 구만리인걸요”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풀 수는 없어요. 그냥 단박에 끊어야지요. 메시아적인 혜안을 지닌 사람이 나타나 앞뒤 양옆 재지 말고 끊고 새로 시작해야지요.” 그걸 누가 하겠냐고 묻자 그는 “아무도 못 하죠. 그러니까 한국 교육은 계속 엉키고 망해갈 수밖에 없죠”라고 말했다. 정말로 우울한 얘기였다.
16일 열린 국가교육회의의 ‘대학입시제도 개편 공론화 추진 방안 브리핑’을 보며 잊고 있던 교장선생님과의 오래된 대화가 떠오른 이유는 국가교육회의의 움직임이 정확히 교장선생님의 분석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당초 국민들이 문재인 정부의 공약을 통해 이해한 국가교육회의는 ‘대한민국 교육의 백년지대계를 짜는 교육 브레인’ 정도의 위상이었다. ‘입시’라는 꼬리에 ‘교육’이라는 머리를 잡아먹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교육해야 할지 고민하지 못하는, 자꾸만 왔다 갔다 하는 미시정책만 내놓는 교육부를 대신해 한국 교육의 크고 긴 그림을 그릴 조직이 국가교육회의였다.
하지만 교육부가 국가교육회의에 던진 첫 질문은 ‘학종과 수능 비율을 몇 대 몇으로 할까요’였다. 국민들은 대한민국의 학교가 불만이고 교사가 미덥잖다는데 ‘비율’이나 물으려고 국가교육회의를 만들었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하긴, 교육계에서는 처음부터 “애초에 국가교육회의를 통해 백년지대계를 그릴 요량이었다면 교육계가 인정하는 전문가 한 명 없이 ‘장관의 정치적 동지’만으로 위원을 구성하진 않았을 것”이란 자조적 목소리가 나왔다.
이날 국가교육회의는 ‘공론화 과정을 엄정하게 관리할 공론화 관리 조직을 구성하고 객관적이고 투명한 공론화 추진을 통해 입시에 대한 국민 신뢰도를 제고하겠다’는 의장님의 ‘머리말씀’을 내놨다. 한자 한자 따져보면 나쁜 말이 하나도 없는데, 합쳐서 읽어보면 몇 번을 읽어도 대체 뭘 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는, 흡사 여론조사기관의 다짐인가 싶기도 한, 그런 머리말씀이었다.
벌써부터 교육계에서는 “국가교육회의는 교육부가 내놓는 정책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해 주는 조직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교육부 안에서조차 “새 입시제도는 논쟁만 일으키다 결국 현행 제도랑 비슷한 선에서 결정될 것”이라는 말이 들린다. 결국 또 교육이 입시에 먹혔다. 한국 교육에 메시아는 없었다.
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ims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