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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언의 마음의 지도]‘유혹’에 면역 키우려면 명확히 말하세요

입력 | 2018-02-23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학자 서울대 명예교수

유혹(誘惑·꾈 유, 미혹할 혹)은 공기처럼 흔합니다. 두 가지입니다. 남을 감정과 생각을 가진 독립적인 개체로 존중하는 유혹, 아니면 성욕 충족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유혹. 긍정적 유혹은 사랑과 결혼으로 이어지기도 하나 부정적이면 성추행, 성폭력이 됩니다. 성추행이나 성폭력이 늘 폭력적이지는 않습니다. 교활한 가해자는 세련된 방법을 씁니다. 은밀하게 행하면 경계와 대처가 어렵습니다.

유혹하는 사람은 준비되어 있지만 당하는 사람은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인간의 동물성은 문명 발전과 무관하게 움직입니다. 정복욕과 성욕으로 나타납니다. 정복욕은 다른 사람을 내 것으로 삼겠다는 욕심이고 성욕은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유혹의 본질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정복욕과 성욕을 모두 포함합니다.

유혹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말에 사로잡히면 안 됩니다. 행동이 말과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야 합니다. 여성은 달콤한 말, 즉 청각적 자극에 잘 넘어간다는 연구도 있으니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나도 역시’ 운동이 세계로 번지면서 국내에서도 성추행과 성폭행 피해자들이 용감하게 나섰습니다. 이름이 꽤 알려진 인물들의 진짜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왜 더 일찍 이런 운동이 일어나 피해자를 줄일 수는 없었을까요.

성추행이나 성폭행의 피해는 몸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마음의 고통에서 못 벗어나고 여러 가지 정신 증상이 삶을 사로잡습니다. 우선, 일을 당하고 나서 그런 일이 생겼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믿게 되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평소 존경했거나 어려워했던 윗사람이 자신에게 실제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처음에는 반신반의(半信半疑)합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특별하고 친밀하게 느끼는 관계’였기에 그랬다는 속임수를 쓰면 피해자는 더욱더 ‘진실 게임’의 혼돈에 빠집니다. 역시 말보다는 행동을 보아야 숨어있는 악의를 들춰낼 수 있습니다.

성추행이나 성폭행 이후의 세상은 이전의 세상과 확연히 다릅니다. 피해자가 세상을 보는 눈도 확 달라집니다. 다른 사람들이 결국은 알아채고 소문을 낼 것 같은 두려움이 삶을 덮어 버립니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세상이니 더욱 큰일입니다. 여성에게는 모든 남성이 잠재적인 성폭행 가해자처럼 느껴집니다. 두려움은 수치심으로, 수치심은 죄책감으로 이어집니다. “내가 강하거나 현명했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다 내 탓이야!” 하는 죄책감입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질책하다가 심하면 자살을 시도합니다.

어려움을 무릅쓰고 성추행, 성폭행 경험을 공개해 사회가 각성하도록 애쓰신 분들에게 경의를 표해야 합니다. 잠재적 피해자를 줄이기 위한 이타적이고 용기 있는 행동이었음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오래 숨기고 있던 개인사를 밝히는 과정에서 다소의 치유 경험이 수반되었기를 기대하지만 걱정이 없지는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사회적 관심과 논의의 장이 결국은 닫히고, 삶의 공간에 혼자 남아 있음을 깨닫게 될 때, 자신과 내면의 대화를 어떻게 이어갈지를 미리 고민해 보시길 권고합니다. 마음 추스르기는 장시간, 장거리 여행입니다. 출발은 불행했으나 도착지의 행복을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두려움이 분노로, 분노가 평정심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생성되어야 하니 조급하게 마칠 수 없습니다.

잊으려고 애쓰지 마세요. 그리할수록 잊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얽매여 버립니다. 두려움, 수치심, 죄책감은 사건일지와 함께 묶어 보관합시다. 어느 누구도 예방하거나 피할 수 없었던 ‘사고’로 생각합시다. 간교하게 준비된 행위는 막기 어렵습니다.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입니다. 과거를 돌아보지 마시고, 현재를 소중하게 살아내고, 미래를 현명하게 계획합시다.

고통스러운 기억이 가슴을 파고들어도 그 사건을 정리하는 주체는 상대방이 아닌 당신임을 잊지 마세요. 상대방을 비난하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용서도 절대로 권하지 않습니다. 단, 분노가 내 삶을 먹어치우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세요. 내가 내 삶을 제대로 살아내는 실천이 가장 통쾌한 복수입니다. 삶의 주도권을 내가 잡고 있는 한 어느 누구도 그 일로 당신의 삶을 망칠 수 없습니다. 허망한 삶을 살아간다면 당신이 당신 삶의 주도권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당신 삶에는 당신의 책임도 일부분 있습니다.

새로운 만남을 과거만의 눈으로 보지 마세요. 성(性)을 모든 관계에 대입시켜 왜곡하지 마세요. 고통스러운 과거가 언제까지나 마음을 휘젓고 다니도록 내버려두지 마세요. 현재의 소중한 인연을 과거 때문에 버리지 마세요.

과거의 환상이 자꾸 살아나도 환상과 현실을 구별합시다. 과거의 부작용인 ‘색안경’을 벗어던지고 ‘현실 감각’이라는 이성(理性)의 눈으로 세상과 삶을 보려 애써야 합니다. 되풀이될 수도 있는 유혹에 대한 면역강화제는 ‘명확한 의사표현’입니다. 과거의 일은 예방주사로 생각합시다. 어른이나 상사에 대한 예의범절에 어긋나는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명확한 의사표현은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한 방책일 뿐입니다.

남들의 이해를 애써 구하지 마세요. 그들을 이해하는 데 내 한계가 있듯이 그들도 나를 전부는 이해 못 합니다. 남의 관점이 아닌 내 주관으로 내 삶의 균형을 찾으세요. 여성은 여성적, 남성은 남성적이어야만 한다는 강박에서도 벗어나세요. 여성성-남성성의 구분은 피동성-능동성, 소극성-적극성 등등의 흑백논리와 사회적 위계질서로 이어지기 마련이니 사회가 부여한 틀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세요.

성추행, 성폭력의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이고 가해자는 대부분 남성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남성이 잠재적 가해자는 아닙니다. ‘나도 역시’ 운동이 지속 가능하려면 남성이 적극 동참해야 합니다. 그들에게 예민한 문제를 편안하게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남자들이 ‘가해자는 대부분 남성’이라는 통계를 불편하게 느끼고 방어적이 되면 바람직한 운동이지만 동참하기를 꺼리게 될 겁니다. 돕고 싶어도 말 한마디 잘못으로 같은 부류로 비난받을까 두려워하는 남자가 많이 있다고 봅니다.
 
정도언 정신분석학자 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