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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법의 재발견]물고기는 왜 ‘물꼬기’로 읽나

입력 | 2018-02-07 03:00:00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물고기’와 ‘불고기’를 발음해 보자. 이상하지 않은가? 문장을 말하면서 다시 확인해 보자.

어제 물고기를 먹었다.
어제 불고기를 먹었다.

이렇게 문장에 넣어 말해야 단어의 실제 발음을 알 수 있다. 표준어나 맞춤법은 실제 발음을 토대로 정해지기에 이런 확인 방식에 익숙해지는 것이 좋다.

‘불고기’는 [불고기]로, ‘물고기’는 [물꼬기]로 소리 난다. 똑같이 ‘ㄹ’ 뒤인데 ‘물고기’에서만 된소리가 나다니 이상한 일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물고기(×)]로 발음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말 그대로 생각이다. 한국어를 모어로 하는 사람은 누구나 [물꼬기]와 [불고기]로 소리 낸다.

이런 소리 차이가 ‘물’과 ‘불’ 때문에 생긴 일인가? 그런지 보려면 다른 증거를 확인해야 한다.

저 위로 물기둥이 솟았다.
저 위로 불기둥이 솟았다.


‘물고기’와 ‘불고기’의 발음 차이가 ‘물’/‘불’ 자체에서 생기는 것은 아니다. [물끼둥], [불끼둥]에서는 모두 된소리 ‘ㄲ’이 나기 때문이다. 역시 [물기둥(×)]이나 [불기둥(×)]으로 발음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문자에 익숙해 생기는 착각이다. 문장 속 소리를 확인해 보자. 그래도 의심스럽다면 녹음해 들어 보는 것도 방법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소리 내야 한다고 정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교육 수준에 상관없이 누구나 [물꼬기/불고기], [물끼둥/불끼둥]이라고 발음한다. 이런 차이는 사실 단어 속 의미 관계 때문에 생긴 일이다. 의미와 발음의 관계를 정리해 보자.



앞말과 뒷말의 관계가 ‘∼의’일 때 뒷말에 된소리가 생긴다. 이런 원리 때문에 우리는 아래 단어들의 뒷말을 된소리로 발음한다.

문고리[문꼬리], 눈동자[눈똥자], 산새[산쌔], 길가[길까],
발바닥[발빠닥], 아침밥[아침빱], 잠자리[잠짜리], 강가[강까], 등불[등뿔]


‘불고기’를 된소리로 발음하지 않는 것도 같은 원리다.

그런데 어디선가 이 원리를 본 듯하지 않은가? 사이시옷의 표기 원칙을 기억해 보자(맞춤법의 재발견 5, 6, 7 참조). 그때 ‘ㅅ’ 표기의 원리는 우리의 발음이 보여주는 원리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물고기’의 발음은 앞선 원리가 표기하지 않는 것에까지 확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물고기’의 발음이 정말 ‘ㅅ’과 관련된 것일까? 증거를 보자.

뭀고기(분류두공부시언해 16:62)

‘물’과 ‘고기’ 사이의 ‘ㅅ’을 보자. ‘ㅅ’과 ‘ㄱ’의 연결은 된소리가 나게 한다. [물꼬기]의 발음이 ‘ㅅ’과 관련됨을 보여주는 것이다. 더 신기한 일이 있다. 1481년의 문헌 속 표기는 500년도 더 된 말의 연결을 보여준다. 그때 그 사람들도 [물꼬기]와 [불고기]를 구분해 소리 내었다는 점을 뚜렷하게. 까마득한 시간 속에서 그들과 우리가 같은 문법 원리에 따라 말하고 있음을 발견하는 신기한 순간이지 않은가.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