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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왜 운동선수는 늘 남보다 더 훈련했다고 말할까

입력 | 2018-01-08 03:00:00

냉정할 수 없는 자기평가의 오류




성공한 운동선수들의 미디어 인터뷰를 분석해 보면 ‘그 누구보다도 내가 더 열심히 운동했다’는 얘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노력이고, 다른 누구보다 자신이 더 많이 노력했기에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고 믿는 선수가 많다. 중요한 대회의 결승전에서 승리한 후에 ‘상대 선수가 저보다 더 훈련을 열심히 한 것 같지만 저의 타고난 재능으로 물리쳤습니다’라고 말하는 선수는 없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선수라도 자신이 남보다 더 노력했기 때문에 이겼다고 말하는 게 일반적이다.

성공한 선수뿐 아니라 대부분의 운동선수들은 자신이 평균보다 더 열심히 훈련한다고 믿는다. 개개인으로 보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전체를 놓고 보면 사실일 수가 없다. ‘모든 선수는 모든 선수보다 더 열심히 운동했다’ 또는 ‘모든 선수의 훈련량은 전체 선수 평균 훈련량보다 높다’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운동선수들은 다들 자신이 남보다 더 많이 훈련하고 노력했다고 생각하는 걸까? 자신의 재능에 대해 겸손한 척하기 때문에? 그것보다는, ‘가용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의 오류 때문이다.

가용성 휴리스틱이란 쉽게, 빠르게 생각나는 근거를 사용해 가치를 평가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방식이다. 운동선수는 자신이 훈련하고 고생한 것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기억한다. 하지만 다른 선수들이 땀 흘리며 운동하는 모습은 본 적조차 없을 가능성이 높다. 같은 팀 선수 또는 함께 운동하는 선수들이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여럿이 함께 운동하는 중이라 해도 결국 자신을 중심으로 모든 경험이 이뤄지기 때문에, 남들이 쏟는 노력에 대해서는 정보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즉, 자신의 노력은 빠짐없이 모두 챙겨서 저울에 달지만 다른 선수의 노력은 주변에서 눈에 띄는 것만 대충 모아서 반대쪽 접시에 올려놓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노력을 모은 것이 다른 선수의 노력을 모은 것보다 항상 무거워 보이는 것은 당연지사다. 내가 성공하면 남보다 노력했기 때문이고, 다른 사람이 성공한 것은 타고난 재능 때문이라 평가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그 때문이다.

○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의 노력을 알았다면

가용성 휴리스틱은 신속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즉시 떠오르는 생각이 타당한 근거가 아닐 수도 있고, 그로 인해 본인이 괴로울 수 있다는 점이다.

1985년 아카데미상 작품상을 받은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자. 이 영화는 이탈리아 출신의 음악가 안토니오 살리에리(1750∼1825)가 오스트리아 출신인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를 시기하는 모습을 그렸다. 살리에리는 방탕하게 생활하는 모차르트가 누구보다도 음악을 사랑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자신보다 항상 더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하고 귀족들에게 인정받는 것에 자괴감을 느낀다. 그는 결국 자살까지 시도하며 정신병원에서 죽어간다.

영화가 사실이라고 가정하면, 살리에리의 고통 역시 가용성 오류에서 비롯한 것일지 모르겠다.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는 하지만 모차르트가 어린아이 때부터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작곡에 투자했는지 정확하게 알긴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인상과는 달리 모차르트가 유흥을 즐겼고 천성이 가볍다고 해서 음악을 게을리했다는 근거도 없다. 모차르트가 살리에리보다 더 아름다운 교향곡을 작곡하고, 더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은 살리에리가 사용한 저울에는 담지 않은, 살리에리가 보지 못한 모차르트의 노력의 결과였을 수도 있다. 살리에리가 이렇게 생각했다면, 모차르트가 죽이고 싶도록 밉지 않았을 것이고 자괴감도 덜했을 것이다.

가용성 오류의 또 다른 문제는 팀 스포츠에서 드러난다. 농구와 축구 같은 팀 스포츠에서 선수들에게 자신의 팀 공헌도를 스스로 평가해 보라고 하면, 그 총합은 항상 100%를 넘는다. 경기에 이겼을 때뿐 아니라 경기에 졌을 때도 ‘내 탓’이라고 하는 선수가 많은데, 이는 겸손해 보이려고만 하는 게 아니다. 이기든 지든, 자신이 경기 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실제보다 크게 느끼는 것이다. 이런 본인 공헌에 대한 과대평가는 불만과 갈등의 원인이 되곤 한다.

결혼 생활과 기업 업무도 마찬가지다. 집안일과 자녀 양육 같은 일에 대한 기여도를 백분율로 평가하는 경우 언제나 부부의 총합이 100%를 넘는다. 남편이든 아내든 대부분 자신의 기여도를 과대평가하고 배우자의 기여도를 과소평가한다. 내가 청소하고 빨래한 것은 다 알고 기억하지만, 내가 없는 동안 배우자가 이불 정리하고 설거지한 것은 알지도 못하고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기업에서도 많은 사람이 자신이 기여한 만큼 보상을 받지 못한다고 느낀다. 팀 단위 프로젝트를 할 때 다른 팀원들의 공헌도를 평가하라고 하면 비교적 정확한 결과가 나온다. 그 총합은 100%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공헌도를 평가하라고 해서 합을 내면 언제나 100%를 훌쩍 넘긴다. 그러니 승진이나 성과급에 만족하는 사람보다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 꼭 필요하지 않은 상대평가 도입은 피해야

다행히 해결책은 있다.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가용성 오류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그 오류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조직 내 구성원 간 직무를 순환시키는 것은 매일 똑같은 일을 하는 데서 오는 권태와 단조로움을 덜어줄 뿐만 아니라 남들이 얼마나 많이, 어떤 의미가 있는 일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이해를 높여준다.

또 가용성 오류의 영향을 덜 받는 평가 체계와 보상 체계를 도입할 수도 있다. 가용성 오류가 발생하는 것은 자신과 다른 구성원을 비교할 때다. 따라서 상대평가를 통한 보상 체계가 절대평가를 통한 보상 체계보다 가용성 오류에 더 취약하다. 개인은 누구나 자신의 공헌을 과대평가하기 때문에 상대평가를 아무리 정확히 한다고 해도 분배 정의에 대한 구성원 간 합의에 이르기 어렵다. 따라서 꼭 상대평가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절대평가를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괜히 평가에 대한 불만을 만들거나 구성원 간 갈등을 조장할 이유가 없다.

어차피 사람들은 자신과 남의 공헌도를 정확하게 비교하지 못한다. 기업들은 가용성 오류의 영향을 덜 받는 평가와 보상 체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김유겸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 ykim22@snu.ac.kr
정리=조진서 기자 cj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