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철 사회부 차장
국정 농단 사건을 취재하며 수의를 입은 전 정권 실세들을 바라보면서 ‘저들에게도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겠지’ 하는 상상을 해본다. 몰락한 보수정권이 가장 아쉬워할만한 대목은 MBC 피디수첩의 ‘광우병’편 방송과 이어진 촛불시위에 잘못 대응한 일이다. 이명박 정부는 광우병 파동의 원인을 기울어진 인터넷 여론이라 생각했다. 그 결과 국가정보원과 군 사이버사령부의 대북 심리전 조직을 누리꾼으로 위장해 정치판으로 내모는 무리수를 두었다. 이는 두고두고 후회스러운 선택이 됐다.
광우병 파동의 원인을 국민과의 소통 부족에서 찾았다면 ‘댓글 사건’이나 ‘블랙리스트’, ‘화이트리스트’ 같은 불행한 잘못은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이들 중 상당수는 가족과 함께 새해를 맞이했을 것이다.
법무부가 주도하는 검찰 과거사 청산에서도 보수정권 실패의 원인이 된 조급증이 엿보인다.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20여 건의 사건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과거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최근 일이다.
그중에는 심지어 재판이 안 끝난 사건도 있다. 법무부를 등에 업은 검찰 과거사위가 재판 중인 사건을 조사하는 건 검찰에 공소를 취소하라는 압력이 될 수 있다. 검찰 과거사위의 목표가 과거사 청산이 아니라 지난 9년을 지우고 부정하는 데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검찰 과거사위 활동이 불필요한 논란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첫 단추부터 조심스레 끼워야 한다. 조사 대상 사건 선정 기준 중 하나인 ‘검찰권 남용’은 자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검찰권 남용의 기준이 무엇인지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검찰 과거사위가 위원들의 정치적 편향에 따라 마음에 안 드는 사건을 골랐다는 비난을 피할 수 있다.
과거사의 기준이 무엇인지도 신중하게 정해야 한다. 조사 대상을 ‘과거사’라고 부르는 데 사회적 동의가 이뤄지지 않아서는 검찰 과거사위 조사 결과 역시 지지를 받기 힘들다. 논란이 끝나지 않은 일을 과거사로 명명해서는 어떤 결론을 내놓아도 정치적 선언 이상이 되기 힘들다.
전성철 사회부 차장 daw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