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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이종수]집을 튼튼하게 지읍시다

입력 | 2018-01-02 03:00:00

‘집짓다 속썩어 죽는다’ 속설… 한국의 대충 집짓기 심각
일본은 빈틈없이 짓고 미국은 평생 사후 관리해줘
집짓기와 국가 관리가 어찌나 똑 같은지…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며칠 전 일본인 교수를 만나 집 짓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 전에 미국인 교수와 같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기 때문에 내 머릿속에서는 자연히 집 짓는 이야기로 한국, 일본, 미국 사회의 비교가 이뤄졌다. 나와 미국인 교수는 지난해에 집을 지었고, 일본인 교수는 몇 년 전 집을 지은 적이 있었다. 서로의 이야기는 완전히 달랐다.

나는 10년 전부터 마을을 하나 만들고 싶은 꿈을 갖고 있었고, 드디어 작은 서재 하나를 강원도 산골에 지었다. 돈은 세상에서 제일 부자로 보이는 은행에서 빌렸고, 공사는 흙과 나무를 잘 다룬다는 사람을 찾아 그에게 맡겼다. 그는 마을 만들기에 관한 내 꿈을 잘 이해하는 것 같았다. 그 공감이 고맙고 믿음직스러워 나는 계약서도 없이 돈을 건넸다.

그런데 일이 생각처럼 진행되지 않았다. 기둥과 서까래는 이끼가 낀 소나무를 쓴 데다 타일과 문짝은 어색함을 한껏 뽐내고, 신발장과 옷장은 합판으로 만들어 놓았다. 거실 마루가 여름 습기를 이기지 못하고 공중부양을 하자 그는 현장을 떠나 돌아오지 않았다. ‘사람을 믿는다는 게 이런 결과를 가져다주기도 하는구나’라는 생각에 절망했다. 집 지으며 고생한 사람은 나뿐이 아니었다. 앞집 아주머니는 집을 수리하다 속이 썩어 암을 얻었고, 사업하는 친구는 공사비 돌려 막기를 일삼는 업자를 만나 3년 만에 겨우 집을 완공했다. 집 짓는 해는 죽을 운이 있다는 말이 실감났다.


일본인 교수의 이야기는 전혀 달랐다. 설계와 시공자가 속을 썩인 일이 없다고 했다. 시공자는 무엇을 더 잘해 줄 수 없을까 늘 미안한 듯 일을 열심히 했고, 자신은 거기에 감사했다는 것이다. 공사 기간에 집주인이 현장에 가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시공자는 투명하게 관리하고 보고했다. 완공 후 한국인 건축가가 자신의 집에 들렀을 때, 마감의 섬세함에 놀라더란다. 이 말이 도저히 믿기지 않아 서울에 와 있는 일본인 건축학도에게 확인 문자를 보냈다. 그는 12월 31일 밤 이런 문자를 보내왔다. ‘들어본 적은 없지만, 일본에서도 제대로 안 되는 경우가 있을 거는 같아요.’ 부실의 발생 가능성에 대한 추측 정도였다.

미국인 교수는 철저한 설계와 계약서 이야기를 했다. 모든 사항을 계약으로 명시해서, 집 한 채를 위한 계약서가 책 한 권쯤 됐다고 했다. 그래서 집 짓는 과정에 문제가 전혀 발생하지 않았고 만족스러웠다며 사진을 보여줬다. 자재의 품질과 가격 수준은 말할 것도 없고, 사후 관리 내용까지 철저했다. 보통 미국에서 주택의 사후 관리는 구조재의 경우 10년, 미장과 장식물인 경우 3년, 샤워실은 평생 보증 및 수리를 해준다고 했다. 부러웠다.

근대 건축의 개척자라 불리는 독일의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는 “신은 디테일 안에 있다”고 고백했다. 작은 진실을 외면하고 우리가 구원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뜻이다. 부실을 여기저기 감춰놓고, 위대한 건축을 말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자기 직업에서 엉망으로 살아놓고 영혼의 구원을 말하는 것도 어려워 보인다. 돌려 막기 공사로 3년간 고생을 시킨 시공업자를 추적해 찾아간 내 친구는 그가 큰 교회의 권사라는 사실에 놀랐다. 이쯤 되면 철학자 해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이 피부에 와 닿을 정도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우리는 아직 선진국을 자임하기에는 부족한 구석이 많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는 가입했지만 OECD 평균치는 우리와 선진국의 격차를 비교하는 기준치로 사용될 뿐 우리의 현실은 아니다. 부실 사고로 생명을 잃는 경우가 끊이지 않으며, 속을 들여다보면 부실하고 허술한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정직과 투명, 그리고 탁월을 요구하는 디테일이 너무나 많은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진짜 늦은 때다. 이미 우리가 좀 늦기는 했어도, 더 늦기 전에 제대로 된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 새해를 맞으며 모두 새 각오를 다지는데, 그 각오들로 말미암아 튼튼한 사회가 만들어지고, 아름다운 세상이 펼쳐지길 소망한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지만, 구원 역시 그러하다”는 하이먼 리코버의 말에서 가능성을 본다.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