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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급업체 기술 가로채면 최대 10배 배상

입력 | 2017-12-29 03:00:00

공정위, 공정화 대책 내년초 시행




이르면 내년 초부터 대기업 및 중견기업이 중소기업에 “다른 회사와는 거래하지 말라”며 전속거래를 요구하면 처벌 대상이 된다. 하도급업체가 원청업체에 자사 기술을 빼앗기면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지 않고도 바로 검찰, 경찰 등 수사기관에 고소할 수 있다.

공정위는 28일 이런 내용을 담은 ‘하도급거래 공정화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가맹점 분야 대책, 유통업 분야 대책에 이은 ‘을(乙)의 눈물 닦기’ 세 번째 대책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바로잡고자 하는 것이지 대기업의 경쟁력을 무너뜨리려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원청업체와 하도급업체 사이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전속거래를 원칙적으로 금지할 방침이다. 전속거래란 하도급업체가 원청업체 1곳과만 거래하는 방식이다. 1975년 중소기업계열화촉진법이 생기면서 수출 대기업과 부품 중소기업의 하도급 거래가 도입된 게 시초다. 1990년대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자 정부는 원가 절감 및 공동 기술개발을 독려하기 위해 대·중소기업의 수직계열화를 독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속거래는 부작용이 많았다. 무엇보다 원청업체가 ‘절대 갑’으로 군림하는 폐해가 심했다. 일부 대기업이 원가 부담 상승에 따른 비용을 전속거래 하도급업체에 떠넘긴 게 대표적이다. 기술을 탈취하거나 해외 진출을 막는 등의 사례도 있었다.

공정위는 정당한 사유 없이 전속거래를 한 대기업을 하도급법 위반으로 제재할 방침이다. 정당한 사유는 원청기업이 입증해야 한다. 예를 들어 대기업 고유 기술을 하청업체에 전수해 준 뒤 부품을 만들게 하는 등의 이유가 있어야 한다. 관련 법은 국회 본회의 통과만 남기고 있어 이르면 내년 1분기(1∼3월)에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

공정위는 또 기술유용 분야에서 전속고발권을 폐지하기로 했다. 경쟁법에 적용되는 사안을 두고 검찰이 기소를 하려면 반드시 공정위가 고발을 해야 한다. 그러나 기술유용에 한해 이런 전속고발권은 사라진다. 이에 따라 하도급업체가 대기업 등에 자사 기술을 빼앗기면 공정위에 신고할 필요 없이 바로 검찰, 경찰에 고소할 수 있다. 고소 고발 없이 수사기관이 자체적으로 인지해 수사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기술유용 손해배상액은 현행 3배 이내에서 10배 이내로 확대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원가 정보를 요구하면 제재하기로 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원가 정보를 요구한 뒤 이를 빌미로 납품 가격을 깎는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공정위는 조만간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방침이다.

중소기업들은 적극 환영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대·중소기업 간 불균형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라고 밝혔다.

반면 대기업들은 전체적인 취지는 공감하지만 우려되는 부분도 많다는 반응이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전속고발권이 폐지되면 대기업이 온갖 송사에 시달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령 A하청업체와 2, 3년 부품 공급 계약을 맺어 납품을 받다가 기간이 끝나 다시 공개입찰을 거쳐 B사가 선정되면 경쟁에서 밀린 A사는 기술을 탈취당했다며 우리를 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A사가 부품을 납품하려면 제품에 관련된 정보를 해당 기업에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대기업과 하청업체가 10년, 20년 노하우를 공유하면서 서로 제품 개발을 지원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술 탈취에 대한 경계가 높아지면 이런 협력 관계가 약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김준일 jikim@donga.com / 이은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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