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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정상회담 끝나자마자 방공구역 침범한 中전투기

입력 | 2017-12-19 00:00:00


중국 군용기 5대가 어제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무단 침범해 우리 공군 전투기들이 긴급 대응하는 일이 벌어졌다.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어 일명 ‘중국의 B-52 전략폭격기’로 불리는 H-6K 최신형 전략폭격기 2대와 2007년 실전 배치한 제4세대 주력 전투기 J-11 2대, TU-154 정찰기 1대가 제주 남방 이어도 서남쪽 상공으로 진입해 한중일 3국 KADIZ의 중첩 구역을 동서로 횡단했다. 이들 전투기는 1∼3시간 반 만에 일본방공식별구역(JADIZ)을 거쳐 중국으로 돌아갔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국빈 방중 이틀 만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가볍게 볼 수 없다.

우리 공군이 대응에 나서자 중국 측은 한중 군사 핫라인을 통해 “훈련 목적이고 한국 영공은 침범하지 않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폭격기와 전투기, 정찰기가 세트가 돼 합동으로 기동했다는 점에서 정찰용이 아닌 실질적인 전투 훈련으로 봐야 한다. 더구나 H-6K 폭격기는 중국군의 대표적인 원거리 타격 전력이다. 경북 성주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기지는 물론 일본, 미국의 괌 등 서태평양의 수상·지상 표적을 타격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이 어제 “우리 외교의 시급한 숙제를 연내에 마쳤다는 데 큰 의미를 두고 싶다”고 방중 성과를 평가했지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정상회담 자리에서 사드 문제의 ‘적절한 처리’ 언급을 빼놓지 않았다. 중국 전투기의 무력시위가 한국의 ‘후속 조치’를 주시하겠다는 중국 정부와 군의 경고로 보이는 이유다.

KADIZ를 침범하면서 중국 국방부는 “전투기 폭격기 정찰기 등이 편대를 이뤄 일본해 국제 공역에서 훈련하면서 원양 실전 능력을 검증했다”며 동해를 일본해라고 적시했다. 문제의 지역은 중국이 2013년 11월 이어도 인근 남쪽으로 중국방공식별구역(CADIZ)을 확장해 선포하자 한국도 같은 해 12월 KADIZ를 넓혀 선포하면서 겹치게 된 곳이다. 방공식별구역은 국제법상 영공으로 인정되지는 않지만 상호 충돌 방지를 위해 설정한 것이어서 비행하려면 상대측에 사전 통보하는 것이 국제관례다. 지난해 일본은 444번이나 KADIZ에 진입했지만 모두 사전 통보했다. 중국은 지난해에만 59번, 올해는 70번 넘게 사전 통보 없이 KADIZ를 침범했다. 일본을 정찰하기 위한 훈련이라면 한국에 대한 사전 통보를 피할 이유가 없다. 중국이 일본을 정찰한다는 명분으로 한국의 KADIZ까지 무력화하고 사드 보복이 끝나지 않았음을 과시하는 듯하다.

문 대통령이 무례 논란을 무릅쓰며 방중한 것은 한중 관계를 복원하기 위한 고육책(苦肉策)이었다. 그렇다면 중국도 최소한의 성의를 보여야 한다. 중국이 아직도 한국을 과거의 속국(屬國)으로 보는 듯한 시대착오적 중국몽(中國夢)을 꾸면서 중국 주도 천하질서의 패권을 노린다면 한국에서 반중(反中) 감정이 커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