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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치 그레이스’ 몰아낸 ‘크로커다일’

입력 | 2017-11-17 03:00:00

군부 지지 음낭가과 前부통령 귀국→ 무가베 사임… 과도정부 대통령 될듯
무가베 부인 그레이스 나미비아 망명




그레이스 무가베(왼쪽 사진)과 에머슨 음낭가과

쿠데타를 주도한 짐바브웨 군부의 지지를 받고 있는 에머슨 음낭가과 전 부통령(75)은 쿠데타 발생 하루 만인 16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짐바브웨의 수도 하라레로 돌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짐바브웨 과도정부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93)이 17일 사임하고 음낭가과가 과도정부 대통령으로 정권을 잡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독재자 남편의 권좌를 물려받으려 했던 그레이스 무가베 여사(52)는 군부의 묵인 아래 나미비아로 망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쿠데타는 유난히 매끄럽게 진행됐다. 음낭가과 전 부통령이 해임된 지 일주일 만에 콘스탄티노 치웽가 육군 참모총장이 쿠데타를 암시하는 듯한 경고 메시지를 던졌고, 이틀 뒤 군부가 정권을 장악했다. 음낭가과 전 부통령과 그를 따르는 군부 세력이 사전에 쿠데타를 모의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치웽가 총장이 지난주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인민해방군 지휘부와 만났다며 최대 투자국인 중국이 이번 쿠데타를 사전에 알았거나 개입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음낭가과 전 부통령은 과거 중국 공산당이 운영하는 베이징 사상학교에 다닌 바 있다.

이번 쿠데타의 비극적인 주인공은 세계 최고령 독재자 무가베 대통령이지만 이 드라마의 공동 주연이 2명이나 더 있다. 그의 아내 그레이스 여사와 오른팔이었던 음낭가과 부통령의 치열한 권력 암투가 쿠데타의 배경이었다.

‘구치 그레이스’로 불릴 만큼 명품 쇼핑광인 그레이스는 일찍부터 권력에 맛을 들였다. 2014년 집권여당 ‘짐바브웨아프리카민족동맹애국전선(ZANU-PF)’ 산하 ‘여성연맹’의 수장에 오르면서 본격적으로 정치 행보를 시작했다. 올해 7월부터는 공개석상에서 무가베 대통령에게 “당신의 후계자가 누군지 말해 달라”며 노골적으로 권력욕을 드러냈다.

무가베 대통령은 아내를 후계자로 만들 수 있을 만큼 여전히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했다가 결국 타의로 권력을 내려놓게 됐다. 2014년부터 그레이스를 후계자에 앉히기 위한 작업을 진행한 그는 독립운동 동지이자 유력한 후계자였던 조이스 무주루 전 부통령에게 대통령 암살 모의에 연루됐다는 혐의를 씌워 경질했다. 무주루 전 부통령을 지지했던 장차관들도 무능하다는 이유로 해임했다. 그레이스가 이 같은 숙청 작업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번에 3년 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음낭가과 전 부통령을 쳐낸 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군부는 이미 참전용사 출신의 음낭가과 전 부통령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었다. 그는 별명이 ‘크로커다일’일 만큼 생존 본능이 뛰어났다. 대통령의 혁명 동지인 그는 40년 가까이 무가베의 장기 집권을 도왔다. 무가베가 사임하거나 사망할 경우 뒤를 이을 가장 강력한 후계자로 거론돼 왔다. 음낭가과 전 부통령은 올해 8월 심각한 구토 증세를 보여 병원에 실려 가면서 자신을 향한 독살 시도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그레이스가 그를 독살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양측의 갈등이 깊어졌다.

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